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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난리 2022
08/22/22  

지난 8월 8일 하루 동안 쏟아진 폭우로 서울 일부 지역은 마치 재난영화를 방불케 하였다. 1907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악의 폭우였다고 한다. 18일 기준 집계를 봤을 때 사망자 14명, 실종자 6명, 부상자 26명, 물난리로 대피한 인원 8261명, 침수 피해를 당한 주택과 상가는 1만 6683건에 달했고 만대가 넘는 차량이 침수되었다고 한다. 친구의 지인은 강남 건물 지하 2층에 주차되어 있던 차를 찾으러 가던 길에 급류에 휩쓸려 실종되었다가 사흘 만에 주검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번 기록적인 폭우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버지였던 40대의 목숨을 그렇게 허무하게 앗아가고 만 것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강남 폭우 피해"라고 검색하니 2011년 7월 27일 자 기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강남 피해 왜 컸나... 100년 만의 폭우에 하천 역류"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시간당 100mm 넘게 폭우가 쏟아졌는데 (서울의 하천 배수시설은 지난 30년간의 강우량을 기준으로 시간당 75-95mm의 비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기록적인 폭우였고 강북의 경우 산이 많아 물이 상대적으로 빨리 빠지지만 저지대의 평지에 위치한 강남은 물이 천천히 빠지고 강남 일대를 지나는 도림천, 양재천이 빗물 처리 능력을 잃어서 빗물과 하수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역류해 상대적으로 저지대인 강남 곳곳에 침수 피해를 키웠다는 내용이었다.

11년 전에도 100년 만의 폭우라더니 이번에는 115년 만의 폭우라며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었다. 그 와중에 몇 정치인들의 행보는 공감 능력 제로에 가까운 소시오패스를 연상케 했다. 수해 현장을 돕겠다고 자원한 의원이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고 말하는 걸 보는데 정말 하마터면 욕설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 사람들 속내야 내 알바 아니다. 무슨 생각인지 최소한의 empathy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건지 궁금하지도 않다. 하지만 정말 사리 분별력이라는 것이 눈곱만큼이라도 남아있다면 카메라를 앞에 두고 어떻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있을까? 눈앞에 벌어진 아수라장에 정신적 충격으로 뇌 이상이라도 온 게 아니라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다.

폭우로 목숨을 잃은 반지하 참사 현장에 가면서 구두를 신고 있던 대통령도 나에게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동행한 주변 사람들이 등산화나 장화를 신은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동영상 속에서 어두컴컴한 지하로 내려가던 대통령이 마지막 계단을 더 내려가지 못하고 "어이쿠"하며 멈출 때 내 마음도 쿵하고 닫히는 기분이 들었다. 한술 더 떠 "근데 여기 계신 분들은 왜 미리 대피가 안 됐나 모르겠네"라고 말하는데 너무 절망스러웠다. 그리고 그 인명피해가 있었던 곳을 배경으로 대통령실 홍보물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며 얼마나 공감능력이 결여되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그 홍보물은 많은 비판을 받고 삭제됨). 물론 대통령은 경황이 없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할 수 있다고 치자. 그래도 보좌진들은 챙겼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나서서 말했어야 하지 않을까? 지도자가 국민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해야 민심도 함께 이끌 수 있는 거 아닌가?

이번 피해를 자연재해냐 인재냐 말들이 많다. 이제 와서 이런저런 잘잘못은 따지고 꼬투리를 잡아본들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없다. 너무나 허망하게 생명을 잃은 사람들이 살아 돌아오지도 않고 한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들의 슬픔이 줄어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비가 퍼붓는 것을 인간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관측하고 개입 가능한 것인지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자연재해이니 어쩔 수 없었다고 두 손을 놓아버리거나 내 잘못이 아니고 "네 탓"이라며 책임 공방만 하고 있다면 이로 많은 것을 잃은 피해자들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싶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제발 이제는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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