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난
08/29/22  

다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 때는 아이들이 서로 싸울 때이다. 아이들이 커가며 부쩍 더 다툼이 잦아진다. 특히 최근 들어 초6 둘째와 초5 셋째의 연년생 전쟁이 치열한데 사춘기 초입에 들어선 걸까? 걸핏하면 서로 눈으로 욕을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나이 몇 살 더 먹은 아이가 절대 강자이고 막내인 넷째는 주로 당하는 쪽이었다면 이제는 막내도 결코 지지 않고 덤비니 싸움이 더 잦아지고 더 커진다. 서로 좀 붙어있지 않으면 덜 싸우련만 왜 꼭 쫓아다니면서 싸우는 건지 모르겠다. 

엄마가 중재에 나서봤자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난투극까지 가지만 않는다면 나서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판사가 아니기에 아이들 싸움에 가해자, 피해자를 찾아낼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넓지도 않은 집에서 소리가 들리고 눈에 보이니 도저히 가만히 묵고(默考)할 수가 없어서 결국 눈에 쌍심지를 켜고 소리를 지르게 된다.  그러면 아이들은 너 때문에 엄마한테 혼났다며 서로를 흘겨보며 원망하고... 이렇게 악순환이 계속된다. 나쁜 패턴이라는 것을 알지만 쉽게 헤어 나올 수가 없어서 아직도 그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중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어릴 때 오빠와 적잖이 싸웠다. 한 번은 오빠랑 엄청 싸우고 있는데 외출하셨던 엄마가 집에 돌아오면서 딱 걸리고 말았다. 아파트 1층 입구에서부터 우리 소리가 들렸다면서 엄마가 한숨을 푹푹 쉬며 "너희들은 대체 왜 그렇게 싸우냐? 언제까지 이럴 거야?"라고 역정을 내셨는데 살다 보니 점점 싸울 일이 줄어들더니 이젠 싸울 일이 전혀 없어져버렸다. 안 싸우고 잘 지내니 평화로운 것 같지만 싸울 일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왕래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나의 형제들은 다들 멀리 살아서 자주 만날 수가 없다 보니 나이 들어서도 형제자매들이 어울려 밥도 먹고 여행도 가고 떠들썩하게 지내는 집들을 보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다. 

지금도 나는 우리 딸이 남동생들과 싸우고 나서 씩씩 거리고 있으면 위로랍시고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말도 마. 이 정도는 약과라니깐... 우리 오빠는 얼마나 극성스럽고 장난이 심했는지 맨날 내 얼굴에 방귀 뀌고 그랬다니깐..." 하면서 오빠의 만행들을 줄줄이 읊어주곤 한다. 하지만 나도 만만한 동생은 아니었다. 세 살 차이가 나면서도 쉽게 지는 아이가 아니었으니깐. 피지컬로는 상대할 수가 없기 때문에 주로 싸움이 커지면 방문을 닫고 방 안에서 소리를 질렀고 심사가 뒤틀리면 오빠의 잘못들을 엄마에게 폭로하곤 했다. 

대부분 나와 오빠처럼 유년시절에 형제자매들과 많이 다툰 기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언젠가 지인에게 우리 아이들이 너무 자주 다툰다고 하소연하며 어릴 때 동생과 자주 다퉜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단 한 번도 싸운 기억이 없다는 것이었다. 에이 설마... 기억이 나지 않는 거겠지... 의심하면서도 '세상에 이런 남매도 있구나' 싶어서 흠칫 놀랐다. 그리고 종종 생각했다.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은 형제? 싸우지 않는 부부처럼 불가능한 거 아닌가? 

암튼 오늘도 우리 집은 아침부터 밥상머리에서 싸움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화 좀 덜 내고 온화한 하루를 보내야지.' 다짐하고 맞은 아침인데 서로 얼굴 마주치자마자 싸우기 시작했고 나의 다짐은 보기 좋게 무너져버렸다. 정말 지나고 나면 생각도 안나는 허무맹랑한 것들을 갖고 싸우더니 잠시 후 초등학교 5학년인 셋째가 "나 밥 안 먹어."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가 났다고 먹던 빵을 그냥 두고 그냥 일어서는 것이 괘씸해서 무조건 먹어야 한다고 했다. 화나고 슬플 때마다 밥을 굶을 수는 없는 거라고도 말해줬다. 그랬더니 아들이 울음을 터트리며 "잼이 너무 조금밖에 없어서 빵이 맛없단 말이야."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 집 일상이다. 나는 가끔 우아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꿈꾸지만 아직 그런 일상은 내게 허락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몸과 마음이 한 뼘씩 자라느라고 그렇게들 얼굴만 마주치면 으르렁대며 싸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입지를 확대하고 위대한 존재를 더 굳건히 하기 위해서 더 격렬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겠지. 우리 아이들이 유난스러운 것도 아니고 모든 인간이 거쳐가는 과정이라고... 다 괜찮다고...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내 자신에게 주문을 걸어보지만... 개뿔! 하등 위로가 되지 않는다. 결국 감정이 이성을 이기고 만다. 얘들아, 제발 평화롭게 밥 좀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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