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
04/23/18  

아버지가 있는 양로병원에 들렀다가 본의 아니게 어떤 사람이 아들과 통화하는 내용을 듣게 되었다. 복도에서 큰 소리로 얘기하였기 때문에 듣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아들에게 한 번 들르라는 말을 계속하고 있었다. 지금 소변을 지려서 옷이 축축해서 불편하다고도 호소했다.“이 사람들, 얘기해봤자 들여다보지도 않아.”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아들은 간호사나 직원에게 말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들의 말처럼 직원에게 불편함을 호소하면 절대로 모른 체 할 리 없다. 아들이 찾아오게 하려고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언제 올 것인가 재차 묻고 있었다.

 

 

노인이 되면 어린아이가 된다더니 자식들이 보고 싶어 전화해서 오라고 하는 모양인데 먹고 살기 위해 바쁘게 일하는 자식은 형편이 여의치 않아 아버지가 계신 양로병원에 한 번 들르기가 쉽지 않은가 보았다. 그런 자식을 붙들고 아버지는 끊임없이 이야기 하고 있었다. 한 번 들르라고.

 

 

통화 내용을 듣고 있자니 며칠 전 중앙일보에 보도됐던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 모텔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된 96세의 한인 할머니와 관련된 기사가 떠올랐다. 기사에 따르면 숨진 할머니의 아들은 지역사회에서 효자 소리들을 정도로 어머니를 잘 모셨다. 모신 기간만 해도 40년이었다. 어머니가 노약하여 거동을 못하게 되었으나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어머니를 양노병원에 모실 수 없어 아들은 그들 부부가 일하는 모텔 방에 모셨다. 그런데 아들 내외가 잠시 동부에 사는 딸집에 간 사이에 어머니가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할머니의 주검이 발견되었던 2월의 솔트레이트는 최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갈 정도로 춥다. 그런데 경찰에 따르면 할머니가 생활하던 모텔 방의 히터는 고장난 상태였다. 모텔 방에서 발견된 음식은 오트밀이 전부였다. 방 내부의 위생 상태도 엉망이었다. 변기는 오물로 넘쳐났고, 욕조의 배수구는 막혀 있었다. 경찰은“욕실 수도꼭지를 트니 오렌지색의 녹물만 나왔다.”고 말했다. 누워있던 매트리스에는 배설물이 말라 있었다. 경찰은 할머니가 추위와 배고픔, 갈증에 시달리다 죽어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검찰은 아들 부부를‘과실치사와 노인 학대’혐의로 기소했다.

 

 

고령화 사회에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이 여럿 있겠지만 이 사건은 그 가운데도 최악의 것이라 말해도 과장되지 않아 보인다. 또 이것을 남의 일이라고 강 건너 불 보듯 해서도 안 된다. 우리 주변에는 앞의 솔트레이크의 한인처럼 60대의 자녀들이 거동 못하는 고령의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한인들은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살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아니 오히려 부모와 자식이 떨어져 사는 편이 서로에게 좋을 때도 있다. 비록 어머니가 영어를 구사하지 못한 이유 때문이라지만 어머니를 양노병원 등에 위탁하고 형편이 허락하는 한 자주 찾아뵈었다면 효자로 소문난 자식이 엄청난 중범죄자로 몰리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자의 아버지도 식구들과 함께 살기를 원했고 함께 살았다. 그러나 거동이 힘들게 되고 누군가가 24시간 돌봐주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게 되자 기꺼이 양노병원으로 가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미국 환자들이 90% 이상인 곳에 머물렀으나 언어소통, 음식 등 여러 가지 환경이 불편하다고 판단되어 한국인들이 90% 이상인 현재 계신 곳으로 옮겼다. 한국인 직원들이 많아 의사소통에 불편함이 없고 입에 맞는 한국 음식도 먹을 수 있어 큰 불편함을 겪지 않고 있다.

 

 

자식들하고 산다고 덜 외로운 것도 아니고 반대로 더 행복한 것도 아니다. 연로하고 거동이 불편한 부모를 24시간 돌봐줄 수 없는 자식이라면 굳이 자신이 모시려고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양노병원이나 재활센터 등 전문기관에서 보살핌을 받도록 하고 가능한 한 자주 찾아보는 것이 더 좋은 봉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머니를 40년 동안이나 모시며 효자소리 듣던 아들이 졸지에 어머니를 방치해 사망케 한 중죄인이 되어 버렸다. 움직이지 못하는 어머니를 부부가 바쁘게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모시려고 했던 것부터가 큰 불찰이다.

 

 

미국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구축된 나라이다. 노인들에 대한 홈케어 서비스도 잘 되어 있고 활동이 부자유스러운 노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노인에게 해당하는 많은 복지제도가 있으니 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가정에서는 사회보장국을 찾아가 우리 부모가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고 그를 잘 활용하는 것도 효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참된 봉양이고 효도인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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