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강세
09/06/22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서 전 세계에 인플레이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이는 달러가 제1의 기축 통화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현상이다. 전 세계 무역의 절반 이상이 달러로 거래되고 있다. 특히 원유시장에서 달러 거래는 절대적이다. 따라서 달러가 강세일 때 원유 가격이 오르게 되면 원유 수입국들은 원래 가격에 웃돈을 얹어주고 수입하는 셈이 된다. 한마디로 달러 강세는 각국의 수입 물가를 오르게 하고, 이는 다시 소비자물가 상승 즉, 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반면 달러 강세는 미국 내 물가를 낮추는 효과를 준다. 미국은 같은 돈을 주고 과거보다 살 수 있는 외국 물건이 늘어난 만큼 미국 내 물가는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일인지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문밖을 한 발자국만 나가보면 모든 물건의 가격이 지난 일 년 전보다 엄청나게 올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미 정부가 팬데믹으로 인한 손실을 줄여주려는 의도에서 국민들과 기업들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풀어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피땀 흘려 일해서 번 돈이 아니고 정부가 일률적으로 나눠주는 공돈이니 받아서 좋고 돈을 쓰니 좋았지만 그렇게 풀어 놓은 돈은 고스란히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져 국민들을 옥조이는 올가미가 되고 만 셈이다. 때문에 달러가 강세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잡히지 않고 있다.

세계 각국은 달러 강세로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방편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있다. 금리가 인상되면 통화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도 위험이 따른다. 자칫하면 경기를 망가뜨리고 잘못하면 부채 위기를 불러올 위험이 있어 금리를 쉽게 올릴 수 없다.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침체 우려가 큰 상황임에도 기준 금리를 올렸다가 침체 불안이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달러화 대비 유로화 환율도 많이 떨어져 9월 2일 현재 1:1을 유지하고 있다.

어째든 미국은 기준금리 인상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지난 8월 26일 ‘잭슨홀 미팅’에서 연준의 파월 의장의 발언은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면 당분간 제약적인 정책 기조 유지가 필요하다. 경제에 ‘고통’을 초래할 방식으로 금리를 계속 인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발맞춰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중앙은행들도 숨 가쁘게 기준금리 인상을 준비하고 있으며, 환율을 끌어내리기 위해 각국의 외환 당국은 보유 중인 달러를 아낌없이 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 중앙은행에서 보유하고 있는 달러를 시장에 팔면 시중에 달러가 늘어나면서 환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서울외환시장에서 한국 시간으로 9월 2일 원·달러 환율은 1,360까지 올랐다. 달러를 살 때는 1,383.80, 팔 때는 1,336.20이다. 머지않아 1,400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환율 상승) 수출이 늘고, 경상수지·무역수지 흑자 폭도 커졌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던 1998년, 당시 평균 환율이 1398원88전으로 1997년 대비 47.08%(447원77전)나 오르자 경상수지 흑자가 401억1280만 달러로 연간 흑자 기준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도 상황이 비슷했다.

하지만 요즈음 한국의 상황은 정반대다. 원화 가치가 하락하는데도 무역수지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원인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복잡하게 얽힌 공급망 구조다. 대부분의 한국 제조 기업들이 해외에서 원재료를 들여와 재가공해 수출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원화의 영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비싼 돈을 주고 원자재를 사와야 한다. 그만큼 원가 비중이 높아지면서 채산성이 떨어지게 된다.

환율이 상승하면 기업에는 득과 실이 따른다. 득은 수출할 때 한국제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져 가격경쟁력이 생긴다. 예를 들어 1달러=1000원일 때 1000원으로 비누 1개를 살 수 있다고 하자. 환율이 올라 1달러가 2000원이 된다면 외국 소비자 입장에서는 1달러를 내고 한국산 비누를 2개 살 수 있게 된다. 이때 1개 값으로 환산하면 1달러였던 비누가 0.5달러가 된 것으로 비누를 파는 한국기업 입장에서는 가격경쟁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펼쳐지고 있는 경제 상황을 보면 과거 공식처럼 적용되던 원칙들이 무너져 버렸음을 알 수 있다. 시장 개방과 함께 국가 간의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었는데 이제는 ‘자국우선주의’, ‘경제블록화’를 선언하고 있다. 또 앞서 얘기한 것처럼 환율상승이 경상수지 개선에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이는 세계 경제 자체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각국의 국내외 상황이 맞물려 빠르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연방준비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인상해서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하고 있다. 또 달러 강세 현상에도 불구하고 통화정책에 변화를 줄 생각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연준의 이런 정책으로는 인플레이션이 해소되지 않을 것이며, 결국 경기침체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코로나19 후폭풍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가 휘몰아치는 현 시점에서 곧 밀어닥칠 경기침체에 대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국가도 개인도 변화무쌍한 경제 상황에 맞추어 적절한 대응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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