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어려운 “적당히”
09/06/22  

세상에 "적당히"처럼 어려운 것이 없다.

손맛이 좋은 분들께 요리 레시피를 물으면 갖은양념 적당히 넣으면 된다고 모호한 대답을 하는데 여기서 적당히는 도대체 감조차 오지 않는다. 그 "적당히"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인데 그들은 절대 가르쳐주지 않을뿐더러 더 반전은 그들도 그것을 수치화해서 말해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아휴~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적당히 넣으면 맛있는 거지."하고 말아버리는데 그 적당히를 알아내지 못해서 똑같은 재료를 갖고도 완전히 다른 맛의 요리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먹을 때도 그렇다. 일단 뭐든 맛있게 잘 먹는 건 좋다. 그런데 딱 알맞게 "적당히" 먹기는 너무 힘들다. "이 정도가 딱 좋다. 여기서 멈추자!" 하고 멈출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대개의 경우 배가 찢어질 때까지 꾸역꾸역 먹게 된다. 과식은 백해무익하다며 매번 뒤늦게 후회도 해보지만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러닝도 그렇다. 솔직히 1km 지나면서부터 피곤해지고 땀이 나고 그만하고 싶을 때가 많다. 2km가 지나면 정말 언제라도 멈출 준비가 되어있다. 멈춰야 할 명목만 주면 된다. 내 체력에 맞게 적당히 뛰고 싶은데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얼마나 더 뛰어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하늘이 노래지고 어지러울 때까지? 지난번 러닝보다 5분 더? 1km 더? 

20대 때 한창 술을 많이 마실 땐 술이 그랬다. 분명 테이블에서 마실 때는 멀쩡했던 것 같은데 일어서면 그다지 멀쩡하지 않았다. 술에 취해 목소리가 커지거나 행동이 과해 지거나 과음 후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는 일들이 빈번했고 그때마다 "다음에는 적당히 기분 좋을 정도만 마셔야지." 다짐을 했지만 적당선을 알아차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좋은 친구가 따라주는 술을 마다하지 못했고 술을 부르는 맛있는 안주와 분위기가 있으면 술을 멈출 수가 없었다. 

"적당히"가 가장 어려운 사람들은 뭐니 뭐니 해도 아이들일 것이다. 아이들은 뭐든 적당히 하는 법이 없다. 대표적으로 아이들은 기분이 좋으면 과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데 기분 좋은 거기까지 적당히 해줬으면 좋겠는데 늘 도를 넘어선다. 몸을 주체하지 못해 덩실덩실 깡충깡충 꺄르르르~ 그러다가 결국 과한 동작에 누군가 다치고 울고불고... 그래서 그런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면 제발 적당히 좀 하라고 누누이 당부하지만 성인인 나도 어려운 그 "적당히"를 아이들이 알아서 해줄 리 없다. 

돌이켜보면 나의 경우 어릴 때는 차라리 편했다. 엄마나 선생님, 나를 보호하는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자고, 가라면 가고, 하라면 했다. 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큰 탈 없이 그럭저럭 잘 살 수가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렇게 사는 게 진저리 나기 시작했고 내 마음대로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지더니 결국 내게 이런저런 지시를 하던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내가 그런 지시를 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내가 지시하는 사람이 되고 그 "적당히"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살맛 날 것만 같았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어려우면서 재미없는 일이기도 했다. "적당한 그만큼"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살아가는 내내 끊임없이 이 놈의 "적당히"와 마주하다 보면 그 기준과 옵션 그리고 결과까지 다양한 데이터가 쌓이고 조금 더 지혜로워지는 걸까? 

40년 넘게 살았는데 아직도 "적당히"가 너무 어렵다. 아니, 살면 살수록 더 어려운 것이 바로 "적당히"인 것 같다. 적당히 먹기, 적당히 일하기, 적당히 놀기, 적당히 사랑하기, 적당히 미워하기, 적당히 벌기, 적당히 쓰기, 적당히 쉬기 등등.  오늘도 나는 적당히 먹지 못해 과식을 했고 적당히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마음이 고단했으니 이제 적당히 마무리하고 들어가 쉬어야겠다. 적당한 타이밍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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