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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 떠난 두 사람
09/12/22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의 서거 소식에 각국 지도자들도 앞 다투어 애도를 표하는 등 국제사회에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공주로 태어나 여왕으로 70년을 살았으니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삶을 살았을지 모르지만, 그도 결국 누구도 피할 수 없고 그래서 누구에게나 평등한 죽음으로 그 모든 것을 마감해야 했다.

Life is but an empty dream. 인생 뭐 있냐는 말, 정말 내가 싫어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이 말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 특히 여왕의 서거 며칠 전 들었던 S의 타계 소식을 듣고는 한숨 속에 이 말이 넋두리처럼 튀어나오고야 말았다.

8월 24일 C로부터 'S가 암에 걸려 두 달 밖에 살지 못할 거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 소식을 전해주면서 C는 S를 만나러 가자고 했다. 나는 S가 만나자고 했냐고 물으니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 우리가 찾아가는 게 실례가 되지 않겠는가?' 나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죽음을 앞두고 집에서 은둔하고 있는 친구를 본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찾아가는 것은 너무나 큰 실례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S는 10여 년 전에 C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당시 S는 여러 분야에서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 B 시의 경찰자문위원회를 만들어 한인커뮤니티와 B 시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노력했고, 그 덕분에 당시 B 시에 한인 시의원이 탄생했고, 그 사람이 시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 한인 시장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임기 중에 사퇴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B 시의 첫 한인 시장을 배출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한인들이 로칼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하는 역할을 S가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S는 2009년 OC한인상공회의소 회장으로도 선출되어 잠시 봉사한 바 있다. 그는 늘 부당함과 맞섰고 불의와 싸웠다. 그런 탓인지 그를 힐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이 그의 정의로운 판단과 이를 참지 않고 표출하는 그의 에너지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올바름을 향해 돌진하는 듯한 행동을 칭찬했다.

S와는 가끔 만나 식사하고 여행을 하기도 했다. 산타바바라에도 다녀왔고, 라구나 비치, 헌팅턴 비치를 비롯해 많은 곳을 다녀왔다. 내가 크루즈 여행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하자 언제 한 번 크루즈 여행을 같이 하자고 약속했으나 그 무렵 코로나 19으로 팬데믹이 오면서 크루즈 여행은커녕 S와 만나지도 못하고 지내다가 C로부터 이런 소식을 들은 것이었다.

그동안의 만남을 통해서 S는 남에게 신세지기 싫어하고, 앞서 얘기한 것처럼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언제나 당당한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사람을 바로 보았음을 깨달았다. 그런 그가 2달밖에 살지 못하게 되었다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가 좀 더 오래 살기를 기도했다.

다음날(8/25), C로부터 S를 만나고 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S는 살도 빠지지 않았고, 겉으로는 건강하게 보였으나 암이 몸 전체로 전이되어 통증이 심해서 매우 고통스러워한다고 했다. 시집간 딸이 출퇴근하며 아빠를 돌보고 있다고 했다. 부인은 건강이 좋지 않아 일 년 전부터 양로원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달리 그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열흘 뒤(9월 4일) S가 운명했다는 소식을 C가 전해주었다. S의 딸이 전해준 부고와 함께. 부고에 의하면 S는 9월 3일 오전 1시경 숨을 거뒀다.

우리네 삶이 참으로 덧없고 부질없다고 느껴진다. 이리 황망하게 갈 것을 온 세상을 다 가지려는 듯 맹렬하게 살았는가? 그의 인생 궤적이 눈앞에 그려지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메어 온다.

그의 부음을 듣는 순간 황망(慌忙)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전을 찾아보니 ‘황망하다’는 '마음이 급하고 당황하여 어리둥절하고 허둥지둥하다'는 뜻이다. 멀쩡한 사람이 2년 안 보는 사이에 병들어 앓다가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는 누구보다 건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다니……

S가 이렇게 일찍 떠날 줄 알았으면 C가 만나러 가겠다고 할 때 따라 나설 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들기도 하지만 어쩌면 나보기가 불편했을 수도 있었을 거라 여겨져 안 가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다.

인생(삶)에는 분명 큰 의미가 있다. 단지 그 의미가 사람마다 다를 뿐, 여왕의 삶이나 범부의 삶이나 삶이라는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으나 그 의미는 다르지 않은가.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것이다. 어떻게 언제 세상을 떠나는가에 관계없이 높고 큰 목표로 최선을 다하며 산다면 그것이 의미 있는 삶이 아닌가 싶다.

9월에 떠난 두 사람의 명복을 빈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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