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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삶의 균형
04/23/18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2016년 더 나은 삶의 질 지수(Better Life Index)’에서 한국은 38개 가입국 가운데 28위를 차지했다.

 

 

OECD가 2011년부터 각국의 주거, 소득, 직업, 교육, 환경, 안전, 건강, 삶의 만족 등 11개 부문을 기준으로 산출해 발표하는 이 지수에서 한국은 2011년 25위, 2013년 27위, 2015년 27위, 그리고 올해 28위로 계속해서 하위권에서 맴돌고 있다.

 

 

올해 발표한 지수에서 한국은 교육(6위)·시민참여(10위)는 상위권에, 주거(17위)·직업(17위)·안전(21위)·소득(24위)은 중위권에, 삶의 만족(31위)·건강(35위)·일과 삶의 균형(36위)·환경(37위)·공동체(37위) 부문에서는 최하위권으로 분류됐다.

 

 

OECD가‘더 나은 삶의 질 지수’산출을 위해 내세운 기준 가운데에는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한 요소도 있지만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따른 생각이나 느낌의 차이로 인해 객관적인 측정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도 있다. 즉 삶의 질이나 행복감은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개입하기 때문에 환경, 소득처럼 객관적인 수치화가 불가능한 요소들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OECD의‘더 나은 삶의 질 지수’를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그런 대표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로 우리가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 바로‘일과 삶의 균형’이다. OECD의‘더 나은 삶의 질 지수’에 따르면 한국 임금근로자 가운데 주당 50시간 이상 일한 비율은 23.1%로 이는 터키, 멕시코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일을 많이 한다는 것은 그만큼 여가 시간이 부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기 어렵다는 말과 다름없다.

 

 

실제로 한국의 온라인 취업포털‘사람인’이 직장인 1,698명을 대상으로‘직장인 야근 실태’를 주제로 조사한 결과 81.2%가 평소 야근을 하고 있었으며, 일주일 평균 3.6번 야근을 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리고 응답자의 81.6%는 잦은 야근으로 질병에 시달린 경험이 있었으며, 이들이 겪은 질병으로는‘만성 피로’가 92.9%(복수응답)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두통’(62.5%),‘어깨통증’(56.8%),‘소화불량’(56.6%), ‘수면장애’(48%),‘피부 트러블’(41%),‘손목터널증후군’(29%),‘탈모’(21.2%),‘디스크’(21%) 등의 질병을 호소했다. 또 32.8%는 잦은 야근으로 인해 직장을 옮긴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런 세태 때문인지 요즘 한국에서는‘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욕구가 높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세칭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대기업에 취업하고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 젊은이들에 관한 언론 보도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이는 그 동안 한국 사회 전반에 퍼져있던‘1등 지상주의’에 대한 경종이기도 하다. 초·중·고등학교 시절 1등을 하고 남들이 말하는 1등 대학, 1등 직장에 들어간다 해도 그것이 곧 행복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는 조금 못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가족과 더불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비록 OECD의‘더 나은 삶의 질 지수’에서 매년 밑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 젊은이들의 의식은 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곳 미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한인들은 어떠한가. 혹시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큰 집에서 살고 자녀들을 더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학원비를 벌기 위해 가족여행을, 친구들과의 등산을, 좋아하는 요리할 시간을 담보하고 있지는 않은가. 기타 치기 좋아하고 요리하기 좋아하는 자식에게 오직 학교 성적과 SAT, AP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다 귀가해서‘다 식구들 먹여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는가. 일과 삶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균형을 살필 겨를도 없이‘일이 곧 삶이요, 삶이 곧 일’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미국에 살면서도 더 한국 사람처럼, 내가 떠나던 그 시절의 한국 사람의 모습과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먹고 사는 것은 어디나 다 똑 같지 미국이라고 한국과 다를 것이 뭐 있나요?”라고 되묻는다면 사실 뾰족하게 할 말은 없다. 하지만 OECD가‘일과 삶의 균형’을‘더 나은 삶의 질 지수’산출을 위한 기준 가운데 하나로 정했기에 이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려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어떤 삶의 모습이 더 행복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요소는 다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오늘 느낄 수 있는 그 행복을 어떤 이유를 들어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가버린 오늘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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