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프면 왜 꼴 보기 싫을까?
09/19/22  

"부모가 아프면 머리가 아프고 자식이 아프면 마음이 아프고 남편이 아프면 화가 난다"는 우스개 소리가 떠돈다. 문제는 이 우스개 소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8월 중순부터 남편이 갑자기 어깨 통증을 호소했다. 아니 갑자기는 아니었다. 난데없이 수구를 시작한 지 두 달째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평소 하지 않던 수구 동작 때문에 어깨에 무리가 왔고 어깨 충돌증후군이 발병한 것이다. 남편은 내가 오른쪽 어깨에 손만 얹어도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아파했고 오른손으로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굽기가 어려울 정도로 일상생활이 불편했다. 남편은 매일같이 정형외과, 한의원을 번갈아가며 물리치료와 재활에 총력을 다했고 나는 한동안은 오른쪽으로는 돌아눕지도 못하는 남편이 몹시 안쓰러웠다. 하지만 어깨는 쉽게 호전되지 않았고 삼 주가 지날 무렵 나도 더 이상은 못 참겠다며 폭발하고 말았다.

발단은 아이들 수영장 라이드가 있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저녁에 귀가해 옷도 못 갈아입고 화장실도 못 가고 정신없이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남편은 나보다 먼저 귀가했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숟가락 하나 거들어주지 않고 밥을 딱 먹고 일어나더니 러닝을 하고 태닝샵에 다녀온다고 하는 것이었다. '어깨 아파서 집안일은 못 하면서 자기 하고 싶은 것은 잘만 하네.' 설거지통에 쌓여있는 설거지를 보는 순간 짜증이 확 몰려왔다.

그러더니 다음날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이 줄줄이 잡혔다고 통보를 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다. 나는 어디가 아프다고 3주씩 쉬어본 적이 있던가? 애 넷을 낳았지만 산후조리도 그렇게 못했다. 코로나 확진으로 인한 1주 격리가 내 인생 최장 휴식일 것이다. 이 대목에서 뚜껑이 제대로 열려버리고 말았다. 난 아무리 바쁘고 아무리 아파도 돌보고 챙겨야 할 일들이 줄줄인데 남편은 본인만 챙기면 된다는 사실이 너무 짜증 나게 얄미웠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나도 아플 때 3주씩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으면 좋겠다(실제로 남편이 3주간 꼼짝도 안 하고 누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직장인이니 꼬박꼬박 출근을 해야 했고 하루빨리 재활하기 위해서 나름 최선을 다했다). 난 허리가 아플 때 거의 엎드린 채 설거지를 하고 기어 다니며 청소를 했는데, 열이 나고 구토가 나도 몸을 일으켜 아이들 밥을 챙겨야 했고 자식이 중환자실에 누워있을 때도 남은 아이들 자가진단 앱을 업데이트하고 학원에 문자를 하고 주문 들어온 것을 포장해야 했는데...... 하면서 갑자기 자기 연민에 빠져들었다.

사람이 아플 수 있다. 또 아프면 쉴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엄마는 아플 수 없다. 아니, 아파도 쉴 수 없다. 물론 하루이틀이야 어떻게든 쉴 수 있겠지만 병이 길어지면 무조건 나만 손해다. 아픈 몸을 이끌고 결국 할 일은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이 아프면? 남편의 일까지 내 일이 된다. 그러니 남편이 아프다고 하면 유독 예민해질 수밖에 없고 병이 길어지면 짜증이 올라올 수밖에 없는 것!

게다가 애초에 남편의 병은 본인이 자처한 일이지 않던가? 수구를 하라고 등 떠민 사람은 없다. 본인이 원해서 시작했고 무리를 해가며 꼬박꼬박 하더니 결국 이 사단이 난 것이다. 가령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노동으로 인한 병이었다면 내가 좀 더 극진이 간호라도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취미생활은 다르지 않는가?

칼럼을 쓰던 중에 단톡방 친구들에게 물었다. 남편이 아프면 왜 꼴 보기 싫을까? 한결같은 답변이 쏟아졌다. "난 아파도 다 해야 하는데 남편은 아프면 아무것도 안 함. 근데 또 자기 하고 싶은 건 다함." 폭풍 공감을 하며 다들 같은 남자와 사는 거 아니냐고 깔깔거렸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남편이 아프면 왜 꼴 보기 싫지?" 그랬더니 남편이 한치에 망설임도 없이 "남편도 와이프가 아프면 마찬가지. 너 코로나 격리 중에 밥 넣어줄 때마다 네가 씩 웃던 모습 잊히지가 않아." 그런다. 아... 그랬구나. 난 정부에서 정해준 대로 격리나 되어야 겨우 혼자 쉴 수 있는 건데... 그것마저 꼴 보기 싫었던 거구나. 휴... 그래도 훈훈하게 마무리를 해보자면 아파도 제발 곁에만 있어다오. 서로가 있어서 다행이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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