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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요 둘이서
09/26/22  

나는 남편과 휴가 중이다. 휴가는 공간의 이동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한 휴가를 위해 어딘가로 꼭 떠나야만 한다. 내가 거주하는 공간에서 일상을 유지하는 휴식은 휴가라 할 수 없다. 나의 공간과 나의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완벽한 자유를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휴가 날짜를 잡고 이제 곧 떠난다는 상상만으로 이미 가슴 벅찬 해방감과 설렘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것을 더욱 완전하게 해주는 것은 휴가지가 바로 제주도라는 사실이다. 서울에서 강원도는 너무 가깝고 해외는 너무 멀게 느껴질 때 우리에게는 제주도가 있다. 비행기 타고 한 시간 남짓 완벽한 거리에 우리에게 평온한 휴식과 충분한 설렘을 줄 제주도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제주도를 참 좋아한다. 국민학교 사회 시간에 배운 바 우리나라는 국토의 2/3가 산이고 삼면이 바다라는 훌륭한 조건을 지녔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제주도는 최고의 휴가지로 휴가를 상징하는 대명사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특히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이 대폭 줄어들면서 제주도는 뜻밖에 대성황을 맞이했다. 지인 중에는 1년에 몇 차례씩 제주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매번 누군가 제주도에 갈 때마다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는데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마치 트렌드처럼 번지는 제주 일 년 살기 아니 하다못해 한 달 살기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일상을 정리하고 훌쩍 떠나기에는 아직 메인 것들이 너무나 많다. 아직은 때가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아이들까지 맡기고 제주도로 출장 가는 남편을 따라 단 둘이 4박 5일이나 휴가를 왔으니 이 정도도 지금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제주 휴가 날짜를 잡고부터는 매일 날씨를 확인할 때마다 꼭 제주 날씨도 함께 확인했다. 특히 이번 휴가는 백록담 정상을 목표로 한라산 등반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날씨가 더더욱 중요했다. 

서울 인근에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산도 겨우겨우 오르는 내가 한라산이라니 시작 전부터 후덜덜 몹시 겁이 난다. 하지만 미룬다고 내 체력이 확 좋아질 것 같지도 않고 그 와중에 나이 들어가고 있으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가는 것이 그나마 유리하지 않을까 싶어서 덜컥 가기로 결정을 했다. 작년 11월 가족들과 함께 한라산 1100 고지를 방문했을 때 잠시 감상했던 아름다움을 기억하기에 더욱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솔직히 한라산, 제주의 바다와 하늘이 아니었다면 나는 굳이 휴가지로 제주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횟집, 바다가 보이는 카페, 갈치요리, 고기국수와 메밀면, 멜젓과 함께 먹는 흑돼지 오겹살은 굳이 제주가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얼마든지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제주에서 확 트인 해안도로를 달리거나 우거진 숲길을 걷고 변화무쌍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단번에 '이래서 제주가 좋구나.'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일상의 고단함, 내가 책임지고 짊어져야 하는 모든 것들은 잠시 내려놓고 제주의 푸른 바다와 하늘을 실컷 바라보았다. 제주도 물가가 고약하고, 넘치는 관광객 때문에 시끄럽고 복잡하고 예전 같지 않다며 이럴 거면 차라리 해외를 가고 말지... 투덜대다가도 서울로 돌아가면 우리는 다시 제주도로 떠나는 꿈을 꾼다. 아늑한 내 공간과 편안한 일상에 안주하길 바라는 우리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엔 훌쩍 어디론가 떠나기를 꿈꾸고 있으니... 이거 참 재미있는 것 같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이제는 더 이상 얽매이긴 우리 싫어요
- 제주도 푸른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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