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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걷는다
10/03/22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꿈이 있으세요? 그 꿈은 무엇인가요?”

꿈이란 무엇인가? 미래에 대한 어떤 기대나 바람인가.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허황된 망상이나 희망사항인가. 과연 내게 꿈이 있기는 한 건가? 나는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꿈은 달성되거나 이룩해야 하는 어떤 목표나 목적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꿈의 사전적 정의는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이다. 즉,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바람이나 기대가 꿈인 것이다. 그래서 이미 이루어진 바람이나 기대는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수년 전 다녀왔던 히말라야 트레킹도 마운틴 발디를 몇 해 올라 다니면서 형성된 기대와 바람, 즉 꿈이었다. 그 기대가 함께 산을 오르던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발전했고, 그 약속이 십여 년 뒤에 실현된 것이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친구들 중에 나만 다녀왔지만 친구들은 애초에 히말라야에 오를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꿈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나에게도 더 이상 꿈이 아니다.

7월부터 일주일에 닷새 걷기 시작했다. 1년 반을 일주일에 두 번씩 걸으면서 자신을 갖게 된 친구의 제안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이루어졌다. 그렇게 2개월쯤 걸었을 때 내 안에서 꿈틀대는 소리가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자'

산티아고 순례길 하면 사람들은 프랑스 생장삐에드뽀흐(Saint Jean Pied de Port)에서 출발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 도착하는 프랑스길(Camino Frances)을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꿈꾸는 순례길은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출발해 해안가를 따라 북상하는 포르투갈 길이다. 프랑스 길은 전체적인 여정이 길기도 하거니와 피레네 산맥을 넘는 등 험한 길도 더러 있어 내가 걷기에 무리가 따를 수 있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을 걷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해안을 따라 걷고 싶었다.

이것이 내 꿈이라고 얘기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제자가 크게 말했다. “선생님 저도 가면 안 돼요? 저랑 제 친구도 같이 가요.”

누구랑 같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아침에 함께 걷는 친구에게 말한 적은 있었지만 그 친구와 함께 가려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친구는 오랫동안 걷지 못한다. 순례길은 먹고 자는 것 빼고는 걷는 것이 일인데.

이 코스를 다녀온 사람들의 기행문을 보면 대부분 리스본에서 도시 관광을 한 후에 포르토까지 버스나 항공편을 이용해 이동한 후 약 150마일을 열하루 동안 걸었다. 하루 15마일 정도를 걸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리스본에서부터 걸을 생각이다. 리스본에서 포르토까지 약 190마일 정도 되니까 총 340마일을 걸어야 하는 대장정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바닷가 마을 Muxia를 거쳐 Fisterra까지 약 58마일을 더 걸을 예정이다. 그래서 약 400마일을 걷고 여러 가지 제반 여건을 고려해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관광한 후에 돌아올 예정이다.

이렇게 먼 길을 혼자가 아닌 서너 명이 함께 걷는다면 힘이 덜 들고 외로움도 덜 하지 않겠는가. 좋다고 했다. 그러자 제자는 여행을 좋아하는 자기 친구에게 부탁해서 출발부터 도착하는 날까지 여행 경로 및 관광 명소와 유적지, 그리고 숙소와 맛집까지 다 조사해서 계획을 세우라고 할 테니까 날만 잡으라고 했다. 이제는 내가 막연하게 갖고 있던 꿈이 제자에게, 그리고 그의 친구에게까지 전파된 형국이 되었다. 꿈은 이렇게 쉽게 전파되는 모양이다.

그로부터 1주일 정도 지난 오늘 내 생각은 더 확실해졌다. 누구와 함께든 혼자든 조만간 산티아고 순례길 탐방에 나선다는 것이다. 함께 걸으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말동무가 있어 힘듦과 외로움이 덜어질 것이고, 반면에 혼자 먹고 자고 걸으면 그만큼 나의 내면을 차지하고 있는 나를 찾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니, 어떤 형태이든 마다할 이유가 없다.

제자의 질문에 의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던 내 꿈을 살짝 들여다 본 후로 공원 산책길이 한층 더 즐거워졌다. 언제나 꿈은 사람을 신나게 한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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