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동길 박사
10/10/22  

10월 4일 연세대 사학과 명예교수 김동길 박사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 2월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가 회복했지만, 지병이 악화되어 퇴원하지 못하고 3월부터 중환자실에서 외부와 격리되어 치료를 받아왔으나 병을 이기지 못했다.

김 박사는 대학교수, 민주화 운동가, 저술가, 국회의원 그리고 보수 논객으로 다양한 발자취를 남겼다. '이게 뭡니까? 이래서 나라가 되겠습니까?' 그의 콧수염과 나비넥타이, 직설적이면서도 웃음과 해학이 담긴 정치평론은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1928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고인은 18살에 월남해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연세대 사학과 교수로 강단에 섰다. 군부 독재 시절에는 정치, 사회 비판에 적극적이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배후로 지목돼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형집행정지로 풀려났고, 1980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내란음모 사건'에도 연루돼 대학에서 두 번째 해직되었다.

이후 민주화 운동과 거리를 두었고, 1984년 복직되었으나 1991년 강의 도중 명지대생 '강경대 치사사건'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가 학생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았다. 이에 사표를 내고 강단을 떠났다. 이듬해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통일국민당에 합류했고,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당권 다툼이 격화되자 15대 총선을 앞두고 정계를 은퇴한 이후 보수 진영 원로로 활동했다.

나와 김동길 박사와의 인연은 이곳 LA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근무하던 방송국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김동길 칼럼을 방송했으며, 내가 타 방송국으로 자리를 옮기자 나를 따라와서(?) 먼저와 비슷한 성격의 칼럼 방송을 했다. 이때 방송국에서 몇 번 만났고, 방송국을 떠난 뒤에는 한국에서도 몇 차례 만났다. 두어 차례 댁에서 저녁식사를 대접 받았고 한국 정치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몇 해 전에 내가 책을 내기 위해 한국을 찾았을 때 내 책에 추천사를 써주십사고 부탁 했다. 그때도 기꺼이 써주겠다며 댁으로 오라고 했다. 역시 저녁식사를 대접 받고 환담을 나누었다. 그날 김 박사가 써준 추천사 전문은 이렇다.

추천의 글
일찌기 나의 스승으로부터 "생각이 죽어서 말이 되고 말이 죽어서 글이 된다"는 가르침을 받은 바 있습니다. "글은 곧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글만 읽고 그 글을 쓴 사람을 제대로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는 '길'이라는 책을 펴낸 그 사람을 직접 만나 보았습니다.
LA 오렌지 카운티에서 주간지 '타운뉴스'를 벌써 20년 가까이 꾸준히 발행하고 있는 안창해 발행인은 만나자마자 지성의 향기를 풍기는 아름답고 믿음직한 인간임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그가 이 책에 담은 글들은 삶에 대한 그의 진지한 자세와 명랑한 태도를 여실히 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첫 만남에서 나는 그를 가까이 알게 된 사실을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사람됨이 세속의 풍진에 쪼들지 않고 싱싱하다는 것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와 나는 그의 책 '길'을 여러 한국인들에게 권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의 글은 그의 생각입니다. 지성어린 그의 글들은 양심을 가지고 한 시대를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의 아름다운 자기 성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독을 권합니다. 김동길(연세대 명예교수)

김 박사의 추천의 글을 보는 순간 나는 책을 내려던 생각을 접었다. 부끄러웠다. 그가 말하는 내가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처럼 나는 지성의 향기를 풍기는 아름답고 믿음직한 인간이 아니었고 세속의 풍진에 쪼들지 않고 싱싱하다는 것도 김 박사의 과찬이었다. 글도 책으로 내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강단에서 당신이 한 말에 대해 학생들이 거칠게 항의하자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단을 떠났던 김 박사야 말로 훌륭한 분이다. 그의 행동이야 말로 세속의 풍진에 쪼들지 않은 싱싱한 행동이고, 양심을 갖고 한 시대를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의 아름다운 자기 성찰을 통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강경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제 대학에 갓 입학해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학생이 무엇을 알고 데모대에 합류했겠는가?’ 이에 대해 학생들은 학생운동가의 희생을 폄훼한다고 심하게 반발했고 김 박사가 강단을 떠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안타까운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대로 녹아 있다.

생전 서약에 따라 김 박사의 시신은 연세대 의과대학에 기증됐고, 김옥길기념관을 포함한 자택은 2020년에 이미 이화여대에 기증됐다. 김 박사는 말만 앞세운 분이 아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다 간 이 시대의 참 스승이다.

두손 모아 김동길 박사의 명복을 빈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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