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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를 만났다
10/17/22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예전에 미국에서 함께 일했던 직장 동료가 고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이었다. 함께 일했던 동료 4명을 모아 단체 톡방을 열었고 톡방 이름을 "전우회"라고 지었더니 다들 너무 적절한 이름이라며 좋아했다. 전우의 사전적 의미는 전장에서 승리를 위해 생활과 전투를 함께하는 동료인데 그 시절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매일같이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 붙어서 같이 일하고 먹고 대화하고 공감했던 우리였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풋내기 시절 그곳에 취직해서 5년을 넘게 다니며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첫 아이도 출산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그때 내 나이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청춘이었고 그래서 그 직장은 나에게 직장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최연소 직원이었는데 동료들은 나에게 엄마, 이모, 언니 같은 사람들로 정말 가족처럼 나를 위하고 챙겨줬기에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고마움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시기에 고용되어 한참을 함께 일하다가 각자 다른 이유로 퇴사하였고 지금은 모두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미국에서 한 직장을 다녔지만 신기하게도 지금은 모두 한국에 살고 있고 한 명만 미국에 남았는데 이번에 고국을 방문하며 다 같이 모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서울, 한 분은 대구, 또 다른 분은 충남 아산에 계셔서 중간 지점인 아산에서 모이기로 했다.

다시 만난 나의 전우들은 신기할 정도로 그대로였다. 함께 일할 당시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던 동료들은 이제 환갑을 넘겨 그 중에는 실제로 손자를 둔 할머니도 있다. 얼굴에 주름이 늘었고 머리도 많이 희끗희끗해졌지만 머리 스타일, 패션 취향, 자세와 표정 등은 그대로여서 정말 어제 만났다가 다시 만난 사이처럼 이질감 없이 편안했다. 솔직히 이번 모임이 너무 오랜만이라 긴 세월, 모진 풍파를 견디지 못 하고 너무 변해버렸으면 어쩌지 내심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역시 나의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만큼 한동안 근황 토크에 여념이 없었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돌아가셨거나 병으로 투병 중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고 그런 이야기를 한참 듣다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어쩌다가 대화의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게 된 걸까? 나에게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즐겁고 신나는 화제로만 이야기가 꽉 채워지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때 우리에게는 브라이덜 샤워, 결혼반지, 웨딩드레스, 허니문, 태명, 베이비샤워, 돌잔치, 새 직장과 집 장만 등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이야기가 가득했었는데......

그런데 어느덧 이제는 병, 죽음, 이별과 같이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가 길게 늘어지니 씁쓸한 마음 어쩔 수가 없다. 대화 중 그나마 웃음꽃이 피는 화제는 옛날이야기뿐이었다. 과거를 회상하다 보면 항상 결론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였다. 과거를 추억해 봤자 무엇하나 현재가 중요하지…... 하면서도 막상 과거를 떠올리다 보면 그때의 추억은 마냥 아름다운 푸르른 젊은 날로 기억되어버린다. 십 년쯤 지나고 나면 오늘도 찬란했던 지난날로 기억될 수 있을까? 

아무튼 한때 한곳에서 일했던 우리는 이제 서로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하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붙잡을 수 없는 세월은 우리를 전혀 다른 곳으로 인도했지만 여전히 우리가 공유하는 아름다운 추억이 있기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전우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내게도 이렇게 다시 만날 전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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