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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18  
시카고 살던 친구가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다. 30여 년 운영하던 세탁소를 정리하고 8월 중순에 떠났다. 또, 볼티모어 살던 친구도 떠났다. 사업체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한국과 미국을 왔다 갔다 하더니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고향에 터를 잡고 집을 지었다.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노년을 한국에서 보낼 계획을 세웠다. 먹고 살기 위해 힘든 이민생활을 참고 살았다. 자녀들이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자 망설임 없이 한국으로 떠난 것이다. 그들이 이민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토로한 것은 언어였다. 한국행을 결정한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로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를 꼽았다. 미국보다 훨씬 부담이 적으며 좋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친구들이 한국에 도착해서 찜통더위 소식을 두어 번 전해 오던 즈음, 미국에서 20여 년 살다가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던 친구 부부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생활 3년 만에 도저히 더 이상 살기 힘들다며 미국으로 돌아 온 것이다. 친구 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미국에서는 주차장에서 무거운 물건을 차 뒤에 싣기 위해 애쓰고 있으면 사람들이 짐 싣는 것을 도와주었다. 한국에서는 도와주기는커녕 물건을 빨리 싣지 않아 자기를 기다리게 한다고 빵빵거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 차를 세우고 지나가라고 손짓하며 기다려 주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파란 신호에 길을 건너고 있는데도 사람들 사이로 차들이 요리 조리 피하면서 제 갈 길을 간다며 분개했다.
 
 
미국에서는 우체국이나 은행 등에서 차례를 기다릴 때, 앞 사람과 사이를 두는 것이 좋았다. 한국에서는 등 뒤에 바싹 달라붙어서 깜짝 놀랐다. 특히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는 앞뒤 사람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깝게 밀착되어 힘이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들이 문화적 이질감과 생활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제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 돌아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문화의 이질적인 차이라던가 일부 한국인들의 질서 의식 결여로 인한 실망감 등은 표면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심층적인 이유는 그들 자신들이 이미 변화해버렸기 때문이다. 한국을 떠나는 순간, 그들은 변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한국인이 아니다. 그들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You Can,t Go Home Again)’라는 토마스 울프의 소설이 있다.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 온 주인공이 그동안 변해버린 고향의 모습에 환멸과 혼란을 느끼며 상실감에 젖는다. 고향이 변했듯이 그 또한 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설의 끝부분에서 주인공은 말한다.“우리는 여기 미국에서 갈 길을 잃어버렸지만 나는 우리가 길을 찾을 것이라 믿는다. I believe that we are lost here in America, but I believe we shall be found.”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고국으로 다시 돌아간 이민자들이 겪는 심리적인 상황도 이 소설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 적응할 수 없다고 한국으로 돌아갔으나 그 곳에서도 역시 적응할 수 없는 자신들을 발견하고‘내 고향’은 어디로 간 것일까라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다시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 고향은 기억이고 지나간 과거이다. 인간은 현재를 살고 있고 미래를 향하고 있으므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토마스 울프의 소설 제목에 나오는‘Home’이란 단어를‘고향’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영어의‘Home’은 단순히‘고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집’혹은‘가정’의 의미도 담고 있다.‘고향’은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어도‘가정’으로는 언제나 돌아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고향’을 대신하는 것은‘가정’이다.
 
 
‘가정’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그곳이 어디든 가족이 있는 곳이‘돌아갈 곳’이고 그곳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현재 살고 있는 곳의 환경과 여건이 열악하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최선을 다한다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어디에 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고향’에 다시 돌아갈 수는 없으나 한국에서의 삶과 미국에서의 삶을 같이 살아 낸 그대, 그 수많은 시간이 고스란히 가슴에 녹아있는 그대, 그 광활한 바다와 대지를 건너 온 그대, 한국인이며 미국인인 그대, 그대는 그대가 발을 딛고 있는 그 자리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반드시 길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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