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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은 모른다
10/24/22  

부제: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얼마 전 친구들 모임에서 엄마가 된 이후부터 내가 좋아하던 음식도 자식이 좋아하면 잘 먹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너나 할 것 없이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맞아 맞아. 나도 홍시를 엄청 좋아하는데 우리 막내가 좋아하니까 아이 하나 더 먹으라고 양보하게 되더라." “어릴 적 엄마가 생선을 발라서 가시 없는 두툼한 살은 내 밥그릇에 올려주고 엄마는 대가리나 가시만 발라 드시는 게 당연해 보였는데 어느덧 나도 그렇게 되더라.” "맞아,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은 남편도 못 먹게 하고 챙겨 두게 되더라고." "아휴! 말도 마. 나는 치킨 닭다리 먹어본 게 언젠지도 모르겠어. 두 개밖에 없으니 늘 아이들 차지가 되더라고." 마치 배틀하듯이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그때 내가 찬물을 확 끼얹었다. "홍시 좀 넉넉히 사면 안 돼? 생선 한 토막 더 구우면 안 돼? 까짓 아주 비싼 음식들도 아니구먼. 우리도 먹고 싶으면 그냥 먹으면 안 돼?" 이야기 흐름에 맞서는 눈치 없는 발언이었지만 정말 오래전부터 차곡차곡 쌓여있던 생각이다 보니 나 스스로 말릴 새도 없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녀들이 모두 먹고살 만한 중산층임에도 자식에게 소소한 것마저 양보하는 것은 정말 순수한 모성애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왠지 심통이 났다. 

나는 지금 초등학생 자녀를 세 명 양육하고 있고 나도 내가 먹는 걸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면 나눠주기도 하고 양보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도 아낌없이 다 양보하거나 자식이 먹다 남은 음식으로 식사를 때우는 일은 지양하는 편이다. 우리 집에서는 찬밥이 한 그릇 남아있으면 무조건 공평하게 인원수대로 나눠주고 그 위에 갓 지은 새 밥을 얹어준다.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어야 할 때면 공평히 나눠주고 애매하게 하나가 남을 경우 내가 하나 더 먹는다. 엄마인 내가 더 먹으면 아이들도 크게 반발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나는 자식과 남편에게 더운밥을 먹이고 찬밥을 데워먹는 티 안나는 소소한 희생의 아이콘 따위는 결코 되고 싶지 않다고 결심했고 일부러 의식적으로 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옛날 어머니들은 그랬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는 그 시절 흔한 레퍼토리였다. 어머니들이 반찬값을 아끼고 아껴서 자식들 대학도 보내고 집도 샀다는 성공신화는 새로울 것도 없었다. 어머니는 마음껏 못 먹고, 못 입어가며 자식을 키우는 것이 그 시대에는 당연한 미덕이었고 어머니는 그렇게 키운 자식의 졸업식에서 학사모를 눌러쓰고 사진을 찍을 때 비로소 당당히 어깨를 펼 수 있었다. 

나는 결코 그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시절 어머니들의 희생으로 우리나라가 급속도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들은 경이롭고 존경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어머니들의 삶만을 들여다봤을 때 그들의 맹목적인 희생은 그저 아름답기만 했던가? 지나친 기대는 부담과 압박을, 끝없는 관심은 개입과 집착을 낳으며 그에 따른 많은 부작용들이 속출하기도 했다. 빈 둥지 증후군(중년의 주부가 자기 정체성 상실을 느끼는 심리적 현상으로 주로 자녀들이 독립하는 시기에 나타난다), 고부갈등, 황혼이혼 등은 어쩌면 어머니가 짜장면이 싫다고 한 데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낳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포기하고 인내하도록 강요받았던 것은 아닐까? 엄마가 희생해야만 비로소 집안이 조용하고 화목하다는 옛날 고리짝 사고에 사로잡혀 엄마가 되는 순간 개인의 행복은 애당초 포기해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자식은 모른다. 세월이 흘러 나중에 자식을 붙잡고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소연을 해 봤자 자식은 죄송하기보다는 억울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좋고 싫은 걸 명확히 말해주셨더라면, 힘들면 힘들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감정을 표현해 주셨더라면…... 엄마와 더 가까워지고 엄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나는 엄마라는 이유로 무조건 희생하고 한없이 인내하며 헌신할 자신도 없지만 생선 대가리를 좋아하는 어머니에게 효도랍시고 생선 대가리만 모아 줬다는 자식 이야기를 표상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나는 내 자식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당당히 말할 것이고, 내가 화나고 짜증 나는 건 이 상황이 힘들어서인데 그건 결코 너희들 잘못이 아니라고 백 번, 천 번 솔직히 이야기해줄 것이다. 적어도 훗날 자식 앞에서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라는 말만은 하고 싶지 않기에 그들을 아낌없이 사랑하되 그만큼 나 자신도 위하고 아낄 것이다. 자식에게 음식 좀 양보한 걸 갖고 비약이 다소 지나쳤을지 모르지만 이 세상 엄마들이 당당하게 좋아하는 닭다리를 집어먹길 응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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