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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불편하세요?”
10/31/22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나눈 후 첫마디로 왜 그렇게 살이 많이 빠졌냐고 묻는다. 체중이 약간 줄기는 했지만 염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모두들 그리 말하니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한술 더 떠서 서너 달에 한 번 정도 만나는 한 중학교 동창생은 만날 때마다 “천하의 안창해도 별 수 없구먼.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늙었냐?”며 근심어린 표정으로 쳐다보기까지 한다.

자주 만나는 고교 선배 중에 한 분이 내 나이 즈음했을 때, 살이 많이 빠져 보였고, 걸음걸이도 상당히 불편한 것으로 보여 만날 때마다 무심코 “형님, 살이 많이 빠졌어요. 어디 불편하신 건 아니죠?”라고 묻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선배는 많이 빠지진 않았는데 하면서 불편해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내가 지금 느끼는 그런 기분을 선배도 느꼈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오래 전에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이 미국 여행 중, 가든그로브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고 해서 인사라도 나눌 겸 찾은 적이 있었다. 당시 반가운 마음에 무심코 여행 중이라 얼굴이 많이 피곤해 보인다는 뜻으로 한마디 했다가 큰 봉변을 당했다. 네 얼굴도 피로로 찌들어 있어 그리 편해 보이지는 않는다면서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필자가 무심코 건넨 말이 그 선생님의 심사를 불편하게 했나 보다. 본래 말의 뜻이라는 것은 이처럼 하는 사람의 의도와 달리 듣는 사람 마음에 달려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한 말이라 하더라도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달리 수용하면 말한 사람은 큰 곤란을 겪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아무리 친하고 가까운 사이라도 말을 주고받을 때는 서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

개인끼리도 이러하거늘 대중을 상대로 하는 정치 영역에서는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필자는 최근에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개딸이라는 말이 무척 귀에 거슬렸다. 그래서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가 찾아보았다. 개딸은 2012년 방영되었던 TV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아버지가 딸을 개딸이라고 부른데서 유래한 말로 개와 딸을 합처서 만든 단어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녀나 손주를 부를 때 ‘우리 똥강아지’라고 부르듯이 이 드라마에서 아버지가 딸을 부르는 애정이 담긴-장난끼 섞인- 호칭으로 사용된 말이 바로 개딸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는 여성들이 인터넷 이재명 팬카페인 ‘재명이네 마을’에서 스스로를 ‘개딸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여기서 더 나아가 이재명을 개 아빠 또는 재명 아빠라고 부르고 있고, 이제는 모든 언론들도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는 여성들을 ‘개딸들’이라고 일컫고 있다.

개딸이란 단어에는 개혁의 딸이라는 또 다른 뜻도 담겨 있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개딸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대중을 상대로 사용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결코 나이든 사람의 어깃장이 아니다. 좋은 표현도 많은데 굳이 좋지 않은 의미로 더 많이 쓰이는 ‘개’를 빌려다가 딸 앞에 붙여 ‘개딸’이라고 부를 필요가 있을까?

요즈음 들어 한국이든 미국이든 가리지 않고 젊은이들은 절제나 함축(含蓄), 심의(心意) 등에 유념해 말하기보다는 감각적이고 즉흥적으로 말하는 경향이 짙다. 그렇다 보니 사용하는 단어나 용어, 문장 등도 거칠고 표현이 적나라하다. 최근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무리들을 ‘천천히 말려 죽이겠다’고 말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자신을 위해 도움을 주리라 믿었던 사람들이 오히려 자기들만 살겠다고 감옥에 있는 자신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다고 생각해 분에 차서 뱉은 말이겠거니 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언론을 통해 그 말을 듣는 불특정 대중들의 느낌은 결코 유쾌할 수 없다. 물론 그로 하여금 그런 말을 뱉도록 만든 사람들의 문제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사람 저 사람으로부터 살이 많이 빠져 보인다는 말을 듣다 보니 석 달에 한 번 하는 정기 검진일만 기다리게 되었다.

검진 당일 주치의는 심각할 정도로 살이 빠진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피검사를 한다며 피를 세 통 뽑았다. 그리고 다음날 전화로 당뇨 수치가 약 먹기 바로 직전이고,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도 턱걸이에 있다며 기름진 음식과 탄수화물을 적게 먹고 야채와 과일을 가급적 많이 먹으라고 했다. 10여 전 전에 고혈압 약을 먹어야 한다는 주치의 말을 따르지 않고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혈압을 정상으로 만들었던 경험을 살려 이번에도 잘 이겨내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는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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