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04/23/18  
퇴근길, 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다.
 
 
Magnolia길을 만나 우회전해서 북상하고 있었다. 편도 2차선, 왕복 4차선이다. 신호에 걸렸다. 1차선을 보니 차량이 많지 않았다. 정지해 있던 2차선에는 차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1차선으로 들어가려고 핸들을 살짝 돌리며 뒤를 보았다. 한참 뒤에 있던 차가 빠르게 달려온다.‘저 차가 가고 나서 뒤따라가면 되겠다.’생각하면서 습관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 대 정도 뒤에 있던 하얀 벤츠가 대열에서 빠져나와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저 차 뒤에 붙으면 되겠구나 생각하고 1차선으로 진입을 시도하려 했다.
 
 
바로 그때 일이 벌어졌다. 벤츠가 1차선 대열에 합류하여 멈춰서고 불과 2초도 지나기 전에 트럭 한 대가 검은 연기, 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 속도가 엄청났다. 트럭 운전자가 멈추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차는 멈추지 않았다. 벤츠와 추돌하고 말았다. 제동 장치가 말을 듣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아, 정말 한 순간에 운명이 바뀔 뻔했다.
 
 
살고 죽는 것이 별거 아니라지만 정말 한 순간이다. 그 자리가 내 자리였을 수도 있었다. 사망까지 이르진 않았을지라도 워낙 큰 사고였기에 운전자가 온전하지는 않았을 거다.
 
 
사고를 목격한 그 전날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역시 퇴근길이었다. 6시 퇴근이지만 조금 늦게 나오면 서두르게 된다. 집까지 10마일이지만 퇴근길은 보통 30여분 걸린다. 그날은 38분 걸린다고 떴다. 시계를 보니 7시가 약간 지나야 도착할 것으로 보였다.
 
 
역시 Magnolia 길에서였다. Crescent를 지나면 길이 넓어지면서 맨 가장자리 차선은 프리웨이를 타도록 연결된다. 그래서 가운데 차선으로 끼어들기를 시도했다.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차를 밀어 넣으며 속력을 내어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경적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안전하게 들어갈 공간이 있었음에도 뒤에 오던 차가 경적을 울린 것이다. 놀라서 뒤차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뒤차는 가장자리 차선으로 빠지면서 내 차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한국 사람이었다. 그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가운데 손가락은 아니었다. 그러다 프리웨이로 들어가 버렸다.
당시에는 프리웨이로 진입하기 위해 차선을 바꾸고 있는데 누군가 끼어들자 짜증을 냈을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사고를 목격하면서 하루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충분한 거리라고 생각하더라도 함부로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조금 빨리 가려고 이리저리 차선 변경을 하지 말아야겠다. 5분 빨리 가려다 50년 빨리 가게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틀 연속 비슷한 일을 겪었다. 사고까지 목격한 탓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운전했다. 최대한 교통법규를 준수하며 한 차선으로 왔다. 평소처럼 빨리 가려고 애쓰지 않았다. 노란 불에도 무조건 멈췄다. 그러자 뒤차들이 옆으로 빠져나와 추월하면서 손가락질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도 아니다. 그래도 천천히, 아니 규정 속도를 준수하기 위해 애를 쓰면서 운전했다. 답답했다.
 
 
참고 기다리는 것을 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앞질러 가는 사람에게 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앞차와 간격을 두지 않았고 다른 차가 앞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기를 쓰고 막았다.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편하고 즐거우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가려고만 했다. 빨리 빨리 가려고만 했다.
 
 
가만히 헤아려 보니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빨리 가나 천천히 가나 가야 할 길은 똑 같다. 바뀌지 않는다. 이제부터 여유를 갖고 천천히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다음날 퇴근길, 천천히 가는 앞차를 따라가지 못하고 앞지르고 있었다. 앞에 트럭이나 버스가 있으면 앞으로 가려고 차선을 바꾸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순간의 행동이 모여 습관이 된다. 그리고 습관은 대부분 의지를 이긴다. 오래된 습관을 쉽게 고치려한 어리석음을 탓하며 체념하지 않고 좋은 습관을 익히도록 노력해야겠다.
오늘 퇴근길을 기대한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