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1/07/22  

필자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버스 통학을 했다. 거의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당시 버스는 스무 살 안팎의 젊은 여성 차장이 버스 중간에 있는 출입문을 닫으며 ‘오라이!’라고 외치면 출발했다. 출퇴근 시간, 만원일 때는 사람과 사람이 밀착되어 콩나물시루를 방불케 했다.

지난해 고국의 전철 안에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가급적 출퇴근 시간을 피해서 외출을 하려고 노력했으나 그날은 부득이하게 그 시간대에 전철을 타게 되었다.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탈 때부터 내 의지와 무관하게 뒷사람들의 밀어붙이는 힘에 의해 밀려서 탑승했다.

등 떠밀려 타기는 탔으나 사방이 모두 사람들에 의해 밀착되어 있어 갑자기 무서움이 밀려왔다. 사람들의 땀 냄새, 입김 등과 그들이 들고 있는 가방이나 물건들이 부딪혀 불쾌감은 배가 되었고 만에 하나 나에 의해 다른 사람들이 불쾌해 할까봐 내 몸이 다른 사람들에게 닿지 않도록 애쓰며 손을 앞으로 모아 가슴에 밀착한 채 한동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어야 했다. 더 이상 탈 수 없을 것 같은데 그 다음 역에서도 신기하게 사람들은 밀고 들어왔다. 내리는 사람은 적고 타는 사람은 점점 더 많아지니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과연 이대로 어디까지 가야 한단 말인가? 두려움 속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한동안 가야했다.

10월 29일 밤, 이태원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시작되었을 거다. 골목은 좁고 입구와 출구를 따로 구별하지 않고, 양방향으로 뚫려 있는 상황에서 나가는 사람은 적고 들어오는 사람은 많은데 뒤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앞 사람들이 전진하지 못하니까 앞으로 밀었을 것이다. 그것도 동시다발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구호까지 붙여가면서 밀어붙이니까 앞으로 쏠리면서 사람들이 앞으로 밀리다가 넘어졌고 그 뒷사람들이 연속적으로 넘어지면서 압사하게 된 사건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순식간에 발생한 참사다.

이 대형 참사는 막을 수도 있었다. 압사 위험을 알리는 112 신고가 사건 발생 4시간 전부터 11차례나 접수되었다. 언론들은 이처럼 신고를 수차례 받고도 경찰이 방치하고 묵살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때 신속하게 대처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숨지고 다치는 사고는 미연에 방지했을 수도 있었다면서.

그러나 현장 치안 담당 경찰들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이태원 파출소 직원 20명이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최선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그 시간 동안 현장 주변에서 폭력, 성추행을 포함해 79건의 신고가 접수됐고, 그 처리를 위해 동분서주했다는 주장이다. 사고가 발생한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파출소의 소장은 한 달 전부터 핼러윈 축제에 참가한 대규모 인원을 통제하는데 필요한 경찰력 부족을 우려해 서울경찰청에 경력 지원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투입할 수 있는 경찰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1 번이나 신고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경찰은 왜 사고 현장에 사전에 진입해 상황을 정리하지 않았을까. 사고가 터지고 희생자 수송을 위해 구급차가 112 센터에서 현장까지 불과 235미터를 가는 데에도 밀려드는 인파와 자동차들 때문에 40분이나 걸렸다고 한다. 또 제복 입은 경찰을 핼러윈 복장을 하고 축제 현장에 나온 사람으로 생각하고 비켜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또, 한편으론 자율적인 시민 축제에 경찰이 물리력을 행사했다고 비난 받을 것을 우려해 경찰력 투입을 주저했을 수도 있다.

이태원 참사의 원인으로 시민들이 과밀에 익숙하다는 점을 꼽는 사람도 있다. 과밀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과밀로 인한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필자가 버스의 과밀에 익숙해 콩나물시루 같았던 버스 속에서 13년을 견디며 통학했던 것처럼 요즈음 한국의 젊은이들은 전철의 과밀에 익숙해 있어 과밀의 위험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는 분석이다.

다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정부 당국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몰리는 행사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과밀로 인해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사태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이번 사고로 희생된 사람들의 명복을 빈다. 아울러 이 사고로 병상에서 신음하고 있는 부상자들의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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