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인머스캣
11/14/22  

언젠가부터 새로운 품종의 과일들이 유행이다. 이십 년 전쯤인가 보다. 한국에 놀러 왔다가 처음 한라봉을 먹었던 것이. 감귤보다 단단한 과육이 팡팡 터지며 과즙이 넘치는데 오렌지보다 당도가 높아서 정말 감동하면서 먹었던 기억이다. 시어머니께서 고급 박스에 고이고이 개당 포장되어 있던 한라봉을 까주시면서 일반 귤과 달리 꽤나 비싼 과일이라고 말씀하셨던 것도 기억난다. 요즘에는 일반 감귤부터 시작해 껍질이 울퉁불퉁하고 볼록 솟은 모양이 한라산을 닮은 한라봉, 껍질이 얇고 향기가 좋은 천혜향, 천혜향과 비슷하지만 꼭지가 한라봉처럼 살짝 볼록한 황금향, 붉은 껍질이 부드럽고 잘 까지는 레드향 등등 어떻게 교배되고 언제 수확하느냐에 따라 맛도 다르고 이름도 다르다 보니 선택의 폭이 참 넓어졌다. 

감귤뿐만이 아니라 포도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 내가 먹고 자란 포도는 익으면 검은빛이 되는 포도와 알이 큰 거봉 정도가 다였는데 요즘에는 포도 종류도 참 가지가지다. 그 중에서 그래도 한 번쯤은 들어보거나 먹어봤을 샤인머스캣! 나는 4년 전 친구와 부산으로 떠나는 KTX에서 난생처음 샤인머스캣을 먹었다. 친구가 간식처럼 조금 챙겨 왔는데 처음에는 이름도 모르고 그냥 알이 유난히 큰 청포도인가 싶었다. 친구가 너무 맛있다며 일단 맛을 보라고 했는데 아직 씹지도 않았는데 입안에 넣을 때부터 솜사탕처럼 아주 달콤한 향이 진동을 했다. 너무 맛있어서 순식간에 사라졌는데 그때 친구가 이 과일의 이름은 샤인머스캣이고 백화점 과일 코너에서 살 수 있다고 알려줬다. 

샤인머스캣이라는 이름이 너무 생소해서 입에 붙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는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한동안 망고 포도라고도 불렀었다. 망고 맛이 난다고 망고 포도라고 불렸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우리나라에서 샤인머스캣을 모르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샤인머스캣은 샤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청포도보다 훨씬 밝고 윤기가 많으며 과육이 단단하고 당도가 높다. 그리고 씨가 전혀 없거나 매우 드물게 나오는 것이 특징인데 놀랍게도 샤인머스캣에는 원래 씨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원래는 씨가 있지만 식물에 사용되는 성장 호르몬인 지베렐린 처리를 통한 부작용으로 씨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지베렐린 처리로 알은 커지고 씨는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아무리 소량이라지만 살짝 께름칙한 기분이... 물론 비싸서 자주 사 먹지도 못하지만 말이다.

아, 그리고 이것은 검색하다가 발견한 내용인데 원래 샤인머스캣은 일본에서 시작된 품종이지만 일본 측이 해외 품종 등록 기간을 놓쳐 일본에 품종 사용료를 지불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 품종이 이렇게나 성공하게 될 줄은 몰랐을 테니 일본으로서는 유감스럽겠지만 이제는 우리가 해외로 샤인머스캣을 수출까지 한다고 하니 우리나라 입장으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암튼 포도의 혁명처럼 나타난 샤인머스캣의 가격이 이제 농가에서 너도 나도 재배를 시작하며 처음처럼 사악한 수준은 아닌데 최근에 샤인머스캣 가격이 1년 만에 41% 하락했다는 기사 제목도 봤다. 한 송이에 3-4만 원씩 하던 게 이제 만원대까지 내려갔으니 사과나 귤처럼 자주 먹지는 못해도 가끔 사 먹을 만해졌는데 문제는 4년 전 먹었던 그 맛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격이 좀 괜찮다 싶어서 사 오면 영락없이 껍질이 억세고 당도가 떨어져서 일반 포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으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격이 떨어지며 품질도 같이 떨어져 버린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게 재배 면적과 착과량을 늘리는 것이 좋을지 가격이 비싸더라도 품질을 높이고 프리미엄 이미지를 지키는 것이 좋을지 잘 모르겠다. '이게 대체 한 알에 얼마야?' 하며 한 알도 소중하게 먹어야 하는 소비자 입장에서야 맛도 좋고 가격도 착했으면 좋겠지만 명품 하이앤드 브랜드들이 피해 갈 수 없는 딜레마처럼 과연 샤인머스캣의 앞날이 어떠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다 쓰고 보니 샤인머스캣 관련 기사 같은 글이 되어버렸지만 속으로는 다음 주쯤 탐스러운 샤인머스캣을 사다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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