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ing Well
04/23/18  

조지 베일런트의‘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이 있다. 원래 제목은‘Aging Well’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원제와 다르게 번역한 까닭을 많이 팔기 위한 시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꼭 그런 불순한 생각만은 아니라고 여기게 되었다. ‘잘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얘기하면서 행복을 논하지 않을 수 없고, 행복의 조건에 관해 많은 비중을 두고 얘기하고 있으니 과히 지나친 시도는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요즈음 세태와 잘 어울리는 제목이기도 하다.

 

 

베일런트는 성인의 발달 과정을 여섯 가지 연속적 과업으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청소년기에는 부모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설 수 있는‘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둘째,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상호관계를 통해 동료들과 어울릴 수 있는‘친밀감’을 발전시켜야 한다. 셋째, 성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사회는 물론 자신에게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직업적 안정’을 이루어야 한다. 넷째, 더 넓은 사회 영역을 통해 다음 세대를 배려하는‘생산성 과업’을 이루어야 한다. 다섯째, 다음 세대에게 과거의 전통을 물려주는‘의미의 수호자’가 되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통합’이라는 과업을 완성함으로써 개인의 삶은 물론 온 세상의 평온함과 조화로움을 추구해야 한다.

 

 

추석날‘소망 소사이어티’의 창립자, 유분자 이사장을 만났다. 겉모습은 70이 안 되어 보였고, 그가 말하는 꿈과 희망, 그리고 열정은 20대 보다 더 뜨겁고 단단해 보였다. 여든한 살이라고 자신의 나이를 밝히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장시간에 걸쳐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그리고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소망 소사이어티’에서 발행하고 있는 잡지와 자신의 저서 등을 주었다. 남가주에 사는 한인들 가운데 유분자 이사장을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간호전문학교 졸업 후에 간호사가 되었고 30대 중반에 미국으로 건너와 간호사로 일하면서 미주간호사협회를 창립하여 회장, 이사장 등을 지냈고,‘비지비’라는 14개나 되는 음식 체인점을 30년 가까이 운영하다가 72세에 은퇴하여‘소망 소사이어티’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사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비해 유언장을 만들자는 사업을 펼치고,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고 학교를 짓고, 치매 노인들을 위한 사업을 하고 시신 기증운동까지 펼치고 있는 그의 모습은 베일런트가 주장하는 단계에 꼭 맞춰지는 삶이라 여겨졌다.

 

 

베일런트가 말하는‘의미의 수호자’는 과거의 문화적 성과를 대변하고, 과거의 전통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단체나 조직, 모임을 이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래 세대와 연결하는 다리의 역할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들어내 알리고 싶어 한다. 유분자 씨는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앞으로 일을 주도해 나갈 젊은이들을 대열의 앞에 세우려 했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의 역할을 잘하고 있었다. 인터뷰하러 간 본사의 기자에게 자신의 꿈과 이상을 얘기하며 자신의 공적을 내세우려 하지 않고, 각종 사회사업의 일선에서 뛰고 있는 젊은 일꾼들과 인터뷰하도록 했다.

또 그는‘통합’이라는 과업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남은 삶을 불태우고 있었다. 자신이 하던 여러 가지 활동들이 미래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여러 젊은이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다. 미래의 주인이 될 그들을 통해 자신이 심은 나무들에서 열매를 수확하려는 노력이 아름다웠다.

인터뷰에 다녀온 기자의 얘기를 전해 들으며 유분자 씨는‘의미의 수호자’단계를 거쳐‘통합의 과정’에 도달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하고 건강한 노후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인은 학식이나 많은 재산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관계이다. 성장기의 성격이나 배움의 깊이 등도 사회 초년생에게는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영향력이 차츰 줄어들게 되고 70대 이후에는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하버드의 에릭 에릭슨 교수는‘나이 듦이 쇠퇴가 아니라 발전’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정립했으며 50세 이후의 삶은 아래쪽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이 아니라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길이라고 설파한 바 있다. 베일런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인생에서 성공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는 돈이 아니라 자기관리와 사랑이다. 때로는 사랑을 만들어 갈 줄 아는 사람에게 돈이 따라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에릭슨 교수나 베일런트 교수가 발표한 Aging Well의 많은 사례를 보면서 81세라는 나이를 잊고 맹렬히 활동하는 유분자 씨의 삶 또한 이를 증명해주는 사례라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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