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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은 감옥이다.
11/28/22  

2022 카타르 월드컵, 이란과 잉글랜드의 경기가 시작되기 전 국가가 울려 퍼질 때 이란 대표팀 선수들 중 일부는 국가를 따라 불렀고, 다른 일부 선수들은 국민의례를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거나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또 경기가 시작된 후에 이란 국민들 대다수는 자기 나라 ‘이란 국가팀’을 응원하지 않았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9월 이란에서 히잡(Hijab)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2세의 여성이 경찰에 구금되었다가 사망했다. 히잡은 무슬림 여성이 외출할 때 머리와 목을 가리기 위해 쓰는 베일로 여성이 착용하는 의복의 하나로 간주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히잡은 머리카락을 가리는 두건으로 스카프처럼 감아 머리와 목, 가슴 등을 가리기 위해 착용한다. 얼굴은 전부 드러낼 수 있다. 여성의 히잡 착용은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몸을 가리는 이슬람 문화와 관련이 있다. 히잡은 ‘가리다’라는 아랍어에서 유래했다.

히잡은 북아프리카와 시리아, 인도네시아 등 무슬림이 국민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여러 국가의 여성들이 널리 착용한다. 이집트나 터키, 인도네시아 등의 나라에서는 여성이 히잡 착용 여부를 선택할 수 있으나 이란, 이라크 등 일부 아랍 국가에서는 여성의 히잡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 히잡을 쓰지 않았다고 구금한 것은 그만큼 히잡 착용을 엄격하게 지키게 하려는 이란 정부의 의지의 표현으로 이슬람의 전통적인 율법을 고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구금 상태에 있던 여성이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여성의 죽음에 대한 항의 표시로 10대 소녀들 중심으로 시위가 시작됐다. 그러자 이란 정부는 시위 진압을 위해 무력을 동원했고, 이는 결국 대중의 분노를 사고야 말았다. 분노는 이란의 억압적인 독재 정권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결합되어 급기야 일반 대중의 시위로 확산되었다. 한 달 만에 80개 도시로 번진 시위는 11월 중순을 넘어서면서 150개 이상의 도시로 확산되었다. 이에 이란 정부는 탱크와 총을 시위대를 향해 겨누었다.

시위와 관련해서 11월 21일 현재 약 1만 6천 명이 체포되었고, 38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당국은 시위 가담 혐의로 최소 1,000명을 기소했다. 또, 수백 명의 시위자들이 '보안 관련 혐의'를 받고 있으며 처형될 위험에 처해 있다. 현재 시위 관련자 6명이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란 정부는 인터넷을 차단하여 국민들이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것을 최대한 제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에서 이란 국민들은 11월 20일 개막한 월드컵을 정부의 무자비한 학살로 많은 시민들이 죽어가고 있음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겼다. 전 세계인들이 월드컵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통상 월드컵 경기 시청률은 하계올림픽 경기 시청률보다 5배 이상 높다. 그러나 이란 축구대표팀 선수들은 이런 국민들의 열망에 동조하지 않았고, 이에 이란의 자유를 갈망하는 국민들은 자국의 축구대표팀을 응원하지 않았다.

비록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이 잉글랜드전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금 이란의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고 대표팀은 유족들에게 위로를 건넨다”면서 국민들의 시위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했지만 이란 국민들은 그가 진실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고 여전히 정부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고 믿었다. 정부가 이란 국민들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음에 분노한 것이다. 일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월드컵 참가 전 대통령을 만나서 금화를 받았고 또, 한 달 전에는 시위를 지지하는 선수들이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이란 전국을 휩쓸고 있는 시위는 이제 단순히 제도 폐지를 요구하거나 악법에 대한 항의 수준을 넘어서서 정권 퇴진을 위한 민중 혁명의 단계에 접어든 것이란 관측이다. 시위대는 폭압적인 정부가 퇴진해야 국민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더 이상 성별로 인한 차별이 없는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미국과 EU 등 국제사회는 이란 정부의 무력을 동원한 시위 진압을 비판하며 이란 정부 관계자와 기관을 제재했다. 또, 유엔은 이란 당국에 "평화적 시위에 참여하거나 참여한 혐의로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사람들을 기소하는 것을 중단하라"며 "사형을 시위 진압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도 멈추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이란 정부는 ‘반정부 시위가 서방의 선동에 의한 것이며, 분리주의 테러리스트들이 폭력으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히잡은 여성들의 감옥이다. 아무리 전통이라고 해도 히잡 착용을 강제하는 것은 여성의 신체 자유에 대한 억압의 수단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전통은 더 이상 전통이 아니다. 단지 사라져야 할 인습에 불과하다. 그런 인습 타파를 위해 거리로 나선 이란 국민들을 응원한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세상, 차별이 없는 세상을 갈망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히잡 착용을 위반하여 구금되었던 여성의 사망으로 촉발된 이란 국민들의 시위가 불합리한 전통 타파와 정권 교체라는 혁명적 결과를 이끌어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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