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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있다
12/05/22  

11월 24일 추수감사절 오전 5시, 우리는 동네 식당 TV 앞에 모였다. 식당에는 수십 대의 대형 스크린 TV가 사방에 펼쳐있다. 제법 넓은 식당에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들이 가득 차있었다. 우리는 열렬히 응원했다. 그러나 우루과이도 우리 팀도 골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0:0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다. 우리 선수들은 월드컵에서 두 차례나 우승한 적이 있고 전력 면에서도 대한민국보다 훨씬 앞서 있어 우승확률이 높게 나온 팀을 상대로 잘 싸웠다.

11월 28일 가나와의 2차전도 식당에 모여 함께 응원하기로 했다. 다섯 시쯤 집에서 나와 식당에 도착했다. 친구들이 먼저 와서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 전반에 두 골을 연달아 먹자 응원하던 사람들 중 일부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어떻게 이기는 경기만 응원한단 말인가. 우리는 가슴 조이며 우리 선수들을 응원했다. 응원의 뜨거운 열기가 전해졌는지 조규성 선수가 연달아 두 골을 성공시켰다. 2대 2 동점이 되자 응원하던 사람들은 환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몇몇 사람들은 일어나서 껑충껑충 뛰면서 기쁨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점의 기쁨도 잠시 경기 종료 10여 분을 남겨 놓고 상대 선수가 한 골을 또 넣어 우리는 2대 3으로 무릎을 꿇어야 했다.

경기 결과는 불만이지만 경기 자체에는 불만이 없다. 왜냐하면 선수들이나 응원하는 사람들이나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전반 시작하고 20여 분만에 우리 팀이 코너킥을 7번이나 했지만 득점으로 연결되지 않던 차에 상대팀이 두 골이나 넣었다. 그것도 첫 골은 상대팀 선수의 손에 맞고 나온 볼을 다른 선수가 차 넣은 것이라 석연치 않은 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로 인정한 것은 이번 대회 규정에 슛한 골이 같은 팀 선수의 손에 맞고 들어갔어도 고의가 아니었다면 득점으로 인정한다는 규정에 근거한 것임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 있었다.

두 골을 연달아 먹고 다시 동점골까지 두 골을 연이어 넣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한 선수가 헤딩슛으로 두 골을 연거푸 집어넣었다. 다시 응원은 이어졌다. 몇 차례 골 찬스가 있었으나 계속 무위로 지나가고 마지막 코너킥 찬스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때 심판은 코너킥을 선언하면서 동시에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을 불었다. 그러자 우리 감독은 왜 코너킥 기회를 주지 않았냐고 항의했다. 그러자 심판은 우리 감독에게 레드카드를 주었다. 다음 경기에 감독이 경기장에 들어서지 못하고 벤치에 앉지도 못하며 무전으로조차 선수들을 지휘 감독할 수 없게 되었다.

포르투갈과의 3차전을 앞두고 우리들 모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저 최선을 다해 싸워주기만을 바랬다. 기대가 없어서 그런지 친구들도 함께 응원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생각에 경기가 시작한다는 오전 7시 정각에 우리가 함께 응원하던 식당을 찾았다.

친구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한 친구가 축구를 끔찍이 사랑하기에 와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친구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돌아서 나오기는 싫었다. 들어가려니까 김밥과 물 한통을 사야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12달러를 주고 김밥과 물을 받아 들고 좋은 자리에 앉았다. 믹스 커피는 무제한 공짜란다.

사방에 설치된 TV는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경기를 중계하고 있었고, 또 한 쪽에서는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도 중계하고 있었다. 두 경기의 결과에 따라서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이 결정되기에 우리는 두 경기를 모두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전반 5분경 땅볼 크로스가 슈팅으로 이어져 한 골을 먹었지만, 27분경 코너킥에서 김영권이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후반 포르투갈이 크리스티나 호날두를 포함해서 몇몇 선수들을 교체했고, 대한민국도 황희찬 선수를 투입했다.
후반 45분이 끝나고 추가시간 8분이 주어졌다. 이 추가시간에 역사가 이루어졌다. 손흥민 선수의 패스가 침투하는 황희찬 선수에게 정확하게 이어졌고 골로 연결되었다. 포르투갈에게 2:1로 승리를 거두었지만,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 결과에 따라 16강 진출이 결정되기에 일어서지 못하고 가나와 우루과이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다행히 가나가 2:0으로 지고 있었고 맹공세를 퍼붓는 우루과이를 가나 선수들이 잘 막아낸 덕분에 대한민국은 16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이 16강에 진출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한국 언론들도 일제히 한국이 포르투갈에 승리한 것을 ‘기적’에 비유하며 경기 결과에 환호했다.

한국은 미 서부시간으로 12월 5일(월) 오전 11시에 세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16강전을 펼친다. 함께 응원을 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16강전에서 브라질을 상대하게 됐다고 안타까워하거나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승리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며 한국의 패배를 기정사실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 기적이 없다면 어떻게 기적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겠는가. 또 한 번의 기적을 기대한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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