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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다, 결혼사진이 애물단지가 될 줄은
12/05/22  

세월이 몹시 흐른 구닥다리 결혼사진을 보며흡족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내 결혼식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돈을 투자했던 것이 바로 결혼사진이었는데 살다 보니 앨범을 자주 꺼내볼 일이 없었고 오래간만에 발견한 커다란 액자는 민망할 정도로 부끄러웠다. 결혼할 당시에는 평생 단 한번 있는 결혼이고(물론 여러 번 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남는 건 사진뿐이니 제대로 해야지 하는 마음에 욕심을 냈는데 어느덧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나는 친정은 미국, 시댁은 한국에 있어서 결혼식을 두 번이나 치렀고 결혼사진도 미국에서는 야외 촬영, 한국에서는 스튜디오 촬영을 했다. 그래서 앨범도 여러 권이고 커다란 액자도 3개나 된다. 하지만 젊고 예뻐야 할 액자 속 우리들이 풋풋해 보이긴 해도 어찌나 어색하고 촌스러워 보이는지 그다지 꺼내 걸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뭔가 집안 인테리어를 망치는 느낌마저 든달까? 그렇게 한참 동안 처박아 두었던 액자를 우연히 발견해서 거실에 두었는데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이 보고는 그때보다 지금이 나아 보인다고 할 정도다. 

부자연스럽게 과한 메이크업, 지나치게 뽀샤시한 올드한 사진 보정 기술, 억지로 예쁜척하는 나와 어색하기 짝이 없게 인조인간처럼 입꼬리만 웃고 있는 남편...... 대체 왜 이런 사진을 확대까지 해서 액자로 만들었는지 의아한 생각마저 든다(아마도 그 사진이 그나마 잘 나온 사진이었겠지?). 전문 사진사와 야심 차게 찍었던 양국의 실내외 사진들이 모조리 부자연스럽고 느끼하고 민망하고 촌스럽고 암튼 도저히 못 봐주겠지만 그때 난생처음 모델처럼 원 없이 사진을 찍었던 것만큼은 꽤나 특별한 추억으로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긴 하다. 

야외 촬영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곳에서 하자며 남편이 대학교를 다녔던 샌디에이고에서 진행했었다. 대녀이자 친구인 A와 남편의 대학 시절 룸메이트가 동행했고 올드타운, 라호야, 코로나도 섬 등을 돌아다니며 해가 넘어가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촬영이 계속되었다. 캘리포니아이긴 했지만 12월이라 해변은 쌀쌀했고 촬영 후반부터는 치아가 덜덜 거릴 정도로 추웠고 계속 억지웃음을 짓느라 턱관절이 아플 지경이었지만 분명 우리는 많이 웃었고 또 행복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 비록 내 결혼사진이 지금은 애물단지 취급을 받지만 그래도 누군가 결혼을 앞두고 사진을 꼭 찍어야만 하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예스"이다. 굳이 그때 사진들을 다시 꺼내 보지 않더라도 눈을 감으면 언제든지 그때 그날의 우리가 슬라이드처럼 플레이되니 말이다. 다만 결혼사진 액자만은 굳이 안 해도 괜찮고 혹시 하게 되더라도 좀 작은 걸로 해도 충분하겠다고 조언하고 싶다. 거대한 액자는 영 벽에 걸어놓기도 부담스럽고, 보관도 쉽지 않아 애물단지 취급받게 되며 결국 나중에 폐기하게 될 때도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이다. 

다음 주면 결혼 18주년이다. 아직도 그때 샌디에이고 차가운 바닷바람 속에서 수십 번씩 키스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기만 한데 세월의 폭격을 피하지 못한 우리는 영락없는 중년 부부가 되어버렸다. 그날의 결혼사진들이 애물단지로 전락했을망정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하겠다는 그날의 약속만큼은 지키고 있는 중이다. 곧 다가올 결혼 20주년에는 샌디에이고에서 다시 결혼사진을 재현할 수 있을까? 행여 연륜이 묻어나더라도 훨씬 느긋하고 편안해진 우리가 사진에 담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사진이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큰 액자로는 절대 만들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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