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운전
04/23/18  

한동안 소식이 없어 궁금해 하던 김 위원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올해 81세인 김 위원장과의 인연은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8년에 처음 만났을 당시 그의 나이는 40대 초반으로 나보다 거의 20살이 많았다. 그러나 야외활동을 주로 하는 보이스카우트 지도자로 만났기 때문에 나이 차이가 어울리는 데 크게 문제된 적은 없었다. 서로 다른 지구였으나 한때는 위원장과 사무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40여 년을 만나다 보니 서로 집안 내력은 물론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어 지금은 웬만한 친척이나 친구보다 더 가깝게 지내고 있다.

 

 

이번처럼 연락이 뜸한 경우는 김 위원장이 한국 방문 중이거나, 타주에 사는 아들들을 방문했을 때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미리 알리고 떠나기 때문에 소식이 두어 달 가까이 끊긴 적은 없었다. 밀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마침 점심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점심 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나 식사하면서 김 위원장의 근황과 자녀들의 소식을 들었다. 작은 아들이 잠깐 다녀갔다는 얘기를 하다가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얘기를 할까 말까 망설이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타주에서 오는 작은 아들을 공항에서 픽업한 날 아들이 운전을 하겠다고 해서 아들에게 운전대를 주었고 가는 날도 아들이 운전을 하고 공항에 갔는데, 아들이 떠나면서‘이제 운전을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면서 지금까지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지금 운전하는 것이 불편하거나 힘이 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했다. 야간 운전은 힘들어서 밤에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은 자동차의 나라다. 헨리 포드가 1914년 대량 생산을 시작한 이래 급성장을 거듭해 1960년대에 미국의 자동차 보유대수는 9천만 대에 달했다. 그때 운전을 시작한 20대~30대였던 젊은이들이 7~80대의 노인이 되었다.

 

 

1967년에 이미 65세 이상 운전자가 천만 명을 넘어섰고 2030년경에는 5천 2백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도로 위에 움직이는 차량 네 대 가운데 한 대를 65세 이상인 사람이 운전하고 있다는 의미다. 70세 이상의 운전자 수는 현재보다 3배가량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 일어난 교통사고의 15%는 65세 이상의 운전자들이 낸다.
운전을 안전하게 하는 사람들은 주변 차들의 속도에 맞춰 운전하고, 옆 차선의 차가 추월하려고 하면 빨리 가거나 속도를 줄임으로 차가 들어올 공간을 만들어 주는 등, 언제나 다른 운전자들을 배려한다.

 

 

그러나 노인들에게 이런 기대는 무리다. 일반적으로 제한 속도의 5~15% 정도 빠르게 운전하는 전체적인 교통 흐름을 무시하고 제한 속도보다도 느린 진행으로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노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반사 신경이 둔화되어 추돌 사고도 많이 일으킨다. 순간적으로 브레이크 대신 가속 페달을 밟아 커다란 사고가 나기도 하며, 거꾸로 주행하거나, 정지신호를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고령자들의 교통사고는 대부분 운전미숙과 순간적 대처 능력의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일부 주에서는 노인 운전자들에 대한 면허증 재발급 규정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펼치고 있다.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사람들의 운전면허를 무조건 말소시키자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노인 운전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정당하게 취득한 면허를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빼앗는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인들의 권익을 지켜주다가 그들의 실수로 희생되는 무고한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합리적인 방안 마련이 필요해 보이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70세 이상이 운전면허를 갱신하려 할 때 고령자 강습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고 있으며, 75세 이상은 인지 기능 검사와 시야 검사를 따로 받도록 하고 있다. 또, 2008년부터는 70세 이상 운전자들의 차량에는 고령자 마크를 의무적으로 부착하도록 했다. 노인의 운전을 금지시키기 보다는 노인이 운전하고 있으니 대비하라는 메시지를 부착하게 한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반납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면허증을 반납하는 고령자에게는 백화점에서 물건을 살 때 자택배송을 무료로 해준다거나 호텔이나 박물관, 미술관 등의 입장료를 할인해주는 식으로 면허증 반납을 유도하고 있다고 하니 일본도 노인들의 잦은 교통사고로 고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결정을 선택해야하는 김 위원장은 우울해보였다. 마주앉은 필자도 착잡했다. 김 위원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운전자라면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대면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구성원 전체의 이익과 안전을 고려하는 사회나 국가도 대책을 강구하겠지만 개개인들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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