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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12/12/22  

필자의 큰아버지는 민주당원이었다. 당시 큰아버지가 적극 지원했던 분은 국회의원을 지냈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리고 그 분은 공화당 정권에 협조해서 주일대사를 지냈으나, 큰아버지는 5.16 군사정권이 들어서자 낙향해서 사업에만 몰두했다. 큰아버지는 지방에서 광산업과 양조업 등으로 어느 정도 사업을 크게 일으켰으나 당신이 꿈꾸던 세상에서 살아보지 못하고 48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큰아버지가 끔찍이 아꼈던 민주당은 자유당 독재에 항거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정당이었다. 1954년 5월 자유당이 ‘초대 대통령 중임 제한 철폐’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사사오입이라는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통과시키자 자유당의 전횡을 막고, 효율적인 헌법수호를 외치며 민국당과 무소속의원 60명이 중심이 되어 1955년 9월 18일 민주당을 결성했다. 그 후 민주당은 1960년 4·19혁명으로 제2공화국의 정권을 장악하였다.

자유당 독재에 맞서 싸운 4·19혁명의 성공으로 민주당은 제2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자유당 조직은 와해되었고 민주당 세력은 크게 신장되어 창당 이래 당의 숙원이던 내각 책임제 개헌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1960년 7월 29일 실시된 국회의원선거에서 전체 233석 가운데 175석(75.1%)을 차지하여 거대 정당으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창당 때부터 문제가 됐던 당 내 구파와 신파 간의 알력은 어느 집단이 더 많은 권력을 차지할지를 놓고 혈안이 된 나머지 민생을 돌보기를 소홀히 하였고, 이는 제2공화국 몰락의 단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군(軍)의 정치 개입을 초래하는 결과를 불러오고 말았다. 불과 9개월 동안에 네 차례의 개각이 이루어질 정도로 민주당 내에서는 각 계파간의 이해관계로 인한 대립이 심했다.

구파와 신파의 내분은 급기야 신당 발족으로 이어졌고, 7·29총선에서 압도적인 다수의석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정부는 정국의 안정도, 눈에 띄는 민생 행보도 보이지 못한 채 총선 다음해인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이후 1963년 7월 18일 창당대회에서 박순천(朴順天)을 당총재로 추대하면서 민주당의 깃발을 다시 들었으나 이미 이반한 민심을 되돌리기는 역부족이었다. 민주당은 1963년 11월 26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13명의 당선자밖에 내지 못했다.

그 후 민주당의 기치를 내세우거나 민주당이란 이름으로 여러 정당들이 탄생과 소멸을 거듭했고, 현재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민주당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당의 뿌리가 1955년 결성된 민주당에 있음을 표명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더불어민주당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추구하는 가치가 같은지, 같다면 그 가치 실현을 통해 국민들의 생활이 더 나아지도록 얼마나 치열하게 의정활동을 하는지의 문제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과거 민주당은 전체 의석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 정당이었지만 정작 돌봐야 할 민생 문제보다 권력 분배에 혈안이 되면서 결국 몰락의 길을 걷고 말았다. 정당의 목표는 정권창출과 이를 통한 권력 장악이겠지만, 이는 국민의 삶 개선이란 정치의 궁극적 목적보다 앞설 수 없다. 이런 까닭에 많은 국민들의 지지로 다수당이 되었다하더라도 국민의 삶 개선 즉, 민생에 소홀하면 언제라도 민심 이반이란 거대한 파도 속으로 침몰할 수밖에 없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여러 행태를 보고 들으면서 과거 민주당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결코 지나친 걱정이나 편견 때문이 아니다. 거대 야당으로서 민생 챙기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당내 얽혀 있는 계파 간 이해관계 상충 문제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여기에 더해 여당 소속 정치인들, 대통령과 각료들 흠집 내기에 더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한 모습은 마치 민생 돌보기를 소홀히 해 소멸해버린 과거 민주당이 더불어민주당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나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민생을 소홀히 하는 정당은 존재 가치가 없다. 그런 만큼 더불어민주당은 내부 총질, 계파 분열, 타당 소속 정치인이나 대통령, 정부 각료들 흠집 내기에 열 올리기보다는 거대 야당답게 당당하게 민생 챙기기에 나서야 한다. 여당도 앞장서서 국민들의 고통 해결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민생 문제에는 여당과 야당이 다를 수 없다. 지난 선거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라도 민생 돌보기를 소홀히 하면 결국 민심 이반에 의해 몰락하고 말 것이다.

철저한 민주당원이었던 큰아버지께서 요즘 대한민국의 정치판을 보고 계신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자못 궁금하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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