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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는 말이야
12/27/22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는 초등학교 6학년 딸은 요즘 부쩍 아침에 머리를 감는다. 머리를 이틀 이상 안 감아도 머리에서 냄새가 잘 안나는 나는 공감할 수 없지만 아침저녁으로 머리를 감아야 하는 남편 말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한파 주의보까지 내렸던 아침, 머리를 감고 말리지도 않은 채 패딩재킷을 입는 딸이 내 눈에 들어왔고 바로 붙잡아 데리고 들어가 헤어드라이어를 켰다. 물론 이 추운 날 머리도 안 말리고 나갔다가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느냐고 잔소리도 두세 마디 했고 딸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드라이어로 딸의 긴 생머리를 말리다가 거울에 비친 딸아이의 얼굴을 보았는데 완전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뭘 잘했다고 이런 표정을 짓냐? 엄마가 뭐 잘못한 거 있냐? 너 감기 걸릴까 봐 다 너 생각해서 그러는 건데 어디 감히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거야?" 하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이 몇 마디를 던지는 순간 딸과 나의 하루를 완전히 망쳐버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참고 또 참았다. 그런데 그 거울로 다른 똥 씹은 표정 하나가 더 들어왔다. 외근으로 평소보다 느긋하게 출근 준비를 하고 있던 남편이었다.

이렇게 나는 또 가족들의 아침을 망치는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 난 그저 딸의 젖은 머리가 걱정스러웠을 뿐인데…... 대체 그게 뭐 그리 잘못되었단 말인가…... 이 집에서 생기는 대부분의 마찰들이 다 이런 식이다. 아이들이 뭔가를 하고 나는 그것을 지적하고 남편은 그런 상황을 싫어하고 그렇게 계속 반복. 남편이 잔소리를 끔찍이도 싫어한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남편에게는 잔소리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닌데 아이가 많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굉장히 많이 발생한다. 하루를 돌이켜보면 아침부터 밤까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내내 나의 잔소리가 계속되는 것 같다. 아이들의 행동거지를 보고 있자면 도저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남편은 나의 잔소리 1절이 시작되고 후렴 구간쯤 들어서면 슬그머니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린다. 그럴 때 내 기분은 정말 별로다.  

하지만 남편도 나만큼 전적으로 양육의 주체자가 되면 별 수 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을 수밖에 없다. 내가 일주일 동안 코로나로 격리를 할 때도 그랬고 주말에 부엌 담당, 청소 담당을 할 때면 어김없이 아이들에게 빨리 먹어라, 조용히 해라,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나만큼이나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나 역시도 나서지 않고 한 발자국 물러서 뒷짐을 집고 지켜보면 '뭐 저런 하찮은 것까지 잔소리를 하고 화를 낼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나의 잔소리를 몰상식한 아줌마 취급하는 것은 정말 부당하기 짝이 없다. 

사춘기만큼 무서운 게 갱년기라던데…... 이러다가 내가 갱년기 시작되면 다들 어쩌려고 그러는지...... 그나마 우리 집은 갱년기와 사춘기의 대격돌이 아직은 시작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에 먹구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당장 오늘 저녁에 비가 쏟아진다 해도 이상할 것 없는 하늘이다.

흔히 십 대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일컫는다. '거친 바람과 성난 파도'라는 의미로 어른도 어린이도 아닌 청소년기의 격동적인 감정 생활을 표현하는 말이다. 요즘은 이 표현보다 중2병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기도 하지만 그 명칭이 무엇이든지 올 것이 오고 있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나도 그 시절을 지나왔고 그 심정을 모르지 않는데 그냥 못 본 척 넘겨주면 되련만 이상하게 도저히 안된다. 이게 부모들이 걸어놓은 “너도 네 자식 낳아 길러봐라”의 마법인가? 

사춘기는 사실 성장의 과정이다. 갱년기 또한 노화의 과정으로 사춘기보다는 살짝 쓸쓸한 느낌이지만 인생길 어느 한 부분임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차피 싫든 좋든 지나가야 하는 과정이고 온 세상이 이것 때문에 난리법석을 떨 필요도, 안절부절 할 필요도 없다. 갱년기와 사춘기가 대격돌 대신 콜라보를 이루길 간절히 바라보지만 만약 순조롭게 되지 않는다 한들 어쩌겠는가...... 딸도 나도 한번 사는 인생인데…... 서툴고 버벅되는 것이 당연하겠지. 얼마나 더 많은 똥 씹은 표정을 봐야 질풍노도의 시기가 끝날지는 모르겠으나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그래, 가보자! Come on! Bring it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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