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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발디(Baldy)
01/09/23  

남가주 일원에 겨울 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사나흘 째 바람이 심하게 불고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하얗게 눈 덮인 마운틴 발디(Mt. Baldy 해발 1만64피트·3,068미터)가 유혹한다. 특히 Brookhurst 길로 북상하다가 5번 프리웨이 교차지점에서 보는 마운트 발디는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발디의 공식 명칭은 샌안토니오(San Antonio) 마운틴이지만 도시에서는 정상의 바위덩어리만 보여 마운틴 발디(대머리 산)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하다. 샌개브리얼 산맥의 LA 카운티와 샌버나디노 카운티 경계에 있으며, 오렌지카운티와 LA에서 가깝기 때문에 남가주 한인들이 즐겨 찾는 산이다.

지난 연말(12/29), 폭풍우 속에 마운트 발디를 등산하던 한인이 추락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산행 도중 한 사람이 추락했고, 실종 11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되었다. 당시 마운트 발디는 폭풍으로 인해 구조를 위한 수색 작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상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고, 이로 인해 구조 활동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마운틴 발디는 필자도 2001년부터 펜데믹 이전까지 자주 찾았던 산이다. 특히 ‘아이스 하우스 캐논 트레일’을 즐겨 찾았고, 발디 정상에도 여러 차례 올랐었다.

마운틴 발디는 한국의 산들처럼 산세가 험준하지는 않으나 폭풍이나 눈보라로 인해 길을 잃거나 발을 헛디뎌 조난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지난 2017년 4월에도 한 한인 유명 산악인이 등반 중 추락사하는 사고가 났던 곳이다. 그 산악인은 실종 4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돼 한인사회에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산악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다. 발디에서 위험에 직면했던 경험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15년 전, 친구 둘과 데빌스 백본 트레일(Devil's Backbone Trail)을 오르다가 돌아온 적이 있다. 스키장까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서 산등성이를 조금 올라 이 악마의 등뼈(데빌스 백본)에 도착했다. 사람을 허공으로 날려버릴 기세로 바람이 심하게 불었고, 등산로는 눈에 덮여 있어 자칫하면 헛발을 디뎌 벼랑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한 친구는 계속 더 갈 것을 고집했고 나는 위험하니 그만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친구는 고집을 꺾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다른 친구와 나는 돌아서서 스키장 쪽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오르기를 그만 두고 친구도 따라 왔던 적이 있다. 그때 만일 우리가 계속 올랐다면 어떤 끔찍한 일이 발생했을지 모를 일이다.

또 다른 경험은 그 후 다른 친구와 둘이 스키 헛 트레일(Ski Hut Trail)로 겨울 발디 정상에 올랐을 때였다. 등산로에 많은 눈이 쌓여 있어서 평소보다 몇 배나 힘들게 산 정상에 도착하니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내리는 눈에 더해 이미 쌓여 있던 눈까지 휘날려 한치 앞도 보기 힘든 것은 물론 동서남북도 구분하기 힘들었다. 우리는 어느 쪽으로 하산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우왕좌왕하다가 친구가 겨우 길을 찾아 간신히 산을 내려올 수가 있었다.

겨울산행은 갑자기 폭설이 내리는 등 기상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안전 수칙에 입각해서 철저한 준비와 대비가 필요하다. 해발 100m가 높아질 때마다 기온은 섭씨 0.6도씩 낮아지며, 초속 1m의 바람이 불면 체감온도는 2도씩 낮아져 방한·방풍 처리가 우수한 파커를 준비해야 한다. 아울러 보온성 및 방수성이 좋은 등산화와 꽁꽁 언 눈길에 대비해 아이젠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날씨 변화가 예상되면 주저하지 말고 하산해야 한다.

경험이 풍부한 리더를 포함해 최소한 3명 이상 동행하고, 길을 잃었을 경우 그 자리에서 불을 피우고 구조대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항상 정답인 것은 아니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대처해 움직여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가급적 겨울철 산행은 눈이 덮인 산을 피하는 것이 좋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지난 수요일(1/4) 오전에 마운틴 발디로 향했다. 30분 정도 걸어 샌안토니오 폭포까지 갔다. 계속 내리던 비가 내가 머물던 시간 동안 잠시 그쳤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오랜만에 찾은 발디는 변함없이 반겨주었다. 차가운 바람을 가슴 속 깊이 들이마시고 서서히 내뿜으며 1월의 발디를 온몸으로 느꼈다. 쉼 없이 떨어지는 폭포의 물줄기를 보면서 2023년 새해의 태평과 만복을 빌었다.

산을 내려와 프리웨이에 들어서자 다시 빗줄기가 차창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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