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병원
01/23/23  

특별히 아픈 데가 없어서 복용하는 약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주치의의 진료를 받고 있다. 그리고 대장 내시경, MRI 검사도 했고, 폐렴, 간염, 대상포진 등 각종 예방 접종을 했으며,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 무렵이면 독감 주사도 빼놓지 않고 맞았다. 필자는 매사에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마음이 불편한 경우는 한두 번은 참지만 계속 반복되면 더 이상 참지 않는다.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다.

4년 전에 주치의를 교체했었다. 당시 주치의는 중국인 의사였는데 진료를 하면서 내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얘기만 하고 10여 분이 지나면 다음에 오라고 하면서 내쫒다시피 했다. 몇 차례 불쾌한 걸 참고 지내다가 마지막 진료를 받을 때 아직 내가 할 얘기가 더 있다고 항의했다.

그러자 그 의사는 한 환자당 14분 정도가 할당된 시간이라며 시간이 되었으니까 오늘은 그만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로 나오자마자 주치의를 한국인 의사로 바꿨다. 새 주치의는 아주 친절했다. 갈 때마다 30여분 이상 대화를 나눴고, 내가 얘기하지 않아도 각종 검사와 안과 등에 가서 진료를 받도록 연결 해주기도 했다. 아주 만족스럽게 다녔다. 갈 때마다 다음 진료 날짜를 정해주고 해당일 하루 전에 연락까지 해줘서 잊지 않도록 해주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병원에 가면 40여 분에서 1시간 정도를 기다리게 했다. 서너 번은 참았으나 드디어 지난 연말, 참지 못했다. 40여 분을 기다리다가 창구 직원에게 ‘올 때마다 너무 오래 기다리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 직원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곧 호명할 것이니까 더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도 20여 분이 지났다. 오는 순서대로 이름을 기록하는 종이에 내가 이름을 적었던 종이는 어디론가 없어졌고 새로운 종이가 놓여 있었다. 오는 순서대로 했다면 사람들이 오는 순서대로 적어 놓은 종이를 없앨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이 나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이미 의사의 진료를 받고 가고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직원들이 순서를 무시하고 늦게 온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주었다는 의심이 들었다. 도저히 참기 어려웠다. 다시 항의하자 여전히 자기들이 하던 일을 계속 하면서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아무런 답변도 없었다. 의사도 만나지 않고 바로 병원을 나와 주치의를 바꾸기 위해 여기 저기 수소문해서 좋은 의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인들의 추천을 받아 다시 한 분을 주치의로 정했다. 그리고 예약을 했고, 주치의를 만나고 왔다. 창구의 직원이 세 사람인데 모두 친절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도 1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며 내 건강에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가를 찾는 진정한 마음이 느껴졌다.

주치의는 여러 가지를 물었다. 내가 나타나고 있는 몇 가지 병으로 의심되는 증상들을 적어간 종이를 보면서 얘기를 하자 그 종이를 아예 달라고 했다. 그 종이를 보면서 하나하나 필자가 알아듣기 쉽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렇다 할 만하게 건강상의 문제는 없었지만 배를 탈 때 예방 차원에서 멀미 방지약이 필요하고-미국에서는 멀미 방지를 위한 귀밑에 붙이는 약도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하다-, 두어 달 안에 오를 계획 중인 산에서 혹시 겪을지도 모를 고산증에 대비해 예방약을 처방해달라고 했다. 주치의는 고산증 약이라고 널리 알려진 바이아그라 대신 약값이 저렴하면서 고산증에 효과가 좋은 약을 처방해주겠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고산증에 대비해서 이번에 구입한 약은 10알에 1달러만 지불하면 되었다.

이제 병원은 꼭 아파야 가는 곳이 아니다. 병들기 전에 예방을 위해서, 혹은 본인도 모르게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질병을 찾아내기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해야 하는 곳이 되었다. 따라서 병원도 기왕이면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곳이어야 한다. 내가 불편하다고 느끼면서 억지로 참으면서 가다 보면 없던 병도 생기지 않겠는가?

건강유지를 통해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하려는 시니어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시대적 변화에 맞추어 병원들도 시니어 환자들을 그때그때 적당히 주먹구구식으로 대하려 하지 말고 환자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철저히 배려해야 할 것이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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