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살자
01/30/23  

연초에 중·고등학교 동창생들의 단톡방에서 유명한 서예가인 친구가 내게 “평소 좋아하는 글귀나 마음에 새기고 있는 문구가 무엇인가?” 물었다. 과연 내가 좋아하는 글귀가 무엇인가? 마음에 새기고 있는 문구가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다 하고 내세울만한 게 없었다. 마침 곁에 있었던 식구들에게 내게 어울리는 좌우명이나 내 인생관이 담긴 문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물었다. 아들과 딸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한마디로 답을 해주었다. “재미있게 살자!”

듣고 보니 그랬다. 식구들에게도 자주 만나는 친지들에게도 입버릇처럼 되풀이 하는 말이 ‘재미있게 살자’였다. 외출하는 아이들 뒤통수에다 내가 늘 하는 말이 “재미있게 놀다와!”였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재미있게 사는 것인가? 무엇보다도 하기 싫은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지는 말아야 한다. 필자의 이런 생각을 가장 잘 따르고 있는 막내아들 얘기를 해볼까 한다.

아들은 중·고등학교 시절을 농구 선수로 생활했다. 대학도 농구 특기자로 진학했다. 그런데 2학년을 마치자마자 농구를 그만두었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농구를 그만둔 것이 아니고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클럽 팀이나 동네에서는 농구를 계속했다. 이유를 묻자 학업에 열중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지만, 훗날 코치의 경기 운영 방식이 자신의 견해와 맞지 않아 힘들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니까 선수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재미있을 리 없었을 것이다.

아들은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직했으나 1년 뒤에 직장을 그만 두고 농구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좋아하는 농구를 하면서 살려는, 의심할 필요 없이 ‘재미있게 살자’라는 생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7개월 만에 다시 직장을 찾기 시작했다. 재미있게 살려고 농구 지도자 생활을 택했으나 생활을 꾸려갈 만한 수입이 따르지 않는 현실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농구 지도자 생활을 한다고 나가서 생활하는 동안 아들은 내가 그토록 혐오하는 문신을 양팔과 다리 하나에 가득하고 돌아왔다. 물론 내가 정중히 부탁해서 내 앞에 올 때는 긴팔 옷을 입기는 하지만 외출할 때는 버젓이 내놓고 다닌다.

내가 잘못 가르친 탓이라고 ‘내 탓이오’를 수없이 되뇌지만 이미 팔뚝과 다리에 채워진 문신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아들은 문신하는 것이 트렌드라고 말하지만 나는 개인적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집에 종종 오는 아들 친구들 중에는 문신한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으니 어찌 이를 트렌드라고 말한단 말인가. 아들이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는 취향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 것이다.

이처럼 내가 즐겁다고 한 일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때가 있다. 또 자기 예상과 달리 스스로가 불편해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자신으로 인해 어느 누군가가 얼굴을 찌푸리고 걱정한다면 그 사람 앞에서는 내 취향만을 고집하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자기 스스로 불편해진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고.

또, 자신과 다른 취향의 사람들을 별종인양 흘겨보아서도 곤란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과 취향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서로가 서로의 다른 생활 방식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더불어 즐겁고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아들의 문신을 아직도 그의 개인적 취향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친구에게 답을 해 주기로 했다. 그런데 “재미있게 살자”를 인생의 좌우명이라고 하기에는 좀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고민하던 중 탁 떠오르는 문구가 있었다. 안빈낙도(安貧樂道), 형편이 넉넉하지 않더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지키며 즐겁게 산다. 얼마나 멋들어지는 말인가. 친구에게 사실대로 설명해주었다. 평소에 자주 하는 말은 ‘재미있게 살자’인데 좀 더 멋있게 하려고 ‘안빈낙도’로 정해봤다고.

우리 모두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만들어, 2023년을 안빈낙도의 해로 만들기 바란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