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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SWEET SIXTEEN
01/30/23  

식당에 가면 내 양옆으로 두 명 그리고 내 앞으로 또 두 명의 어린이가 앉아있었다. 아무리 근사한 식당의 훌륭한 음식이라도 이게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다가 첫째가 고학년이 되면서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아이에게 동생들을 맡기고 남편과 동네 산책도 다녀오고 차도 한잔하고 올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숨통이 다 트이는 것 같았다. 심부름을 시키면 두말없이 자전거를 타고 나가는 모습은 꽤나 듬직했다. 자식이 많아 10년 넘게 미치광이처럼 정신없이 사느라 고단했는데 자식이 커가며 일손을 거들기도 하니 그게 또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다. 계속 흐뭇할 일만 남은 줄 알았었지. 

열세 살에 하늘로 유학을 떠난 아들의 열여섯 생일이 다가온다. 북미에서 열여섯은 Sweet Sixteen이라 불리며 조금 특별하게 대우해 준다. 그리고 열여섯 살부터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기 때문에 십 대라면 누구나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생일임에 틀림이 없다. 아들이 다섯 살 때부터 알았던 한 미국 친구도 얼마 전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고 그 아이 엄마가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렸다. 우리 아들과 함께 뛰놀던 미국에 있는 친구들은 이미 진작에 고등학생이 되었고 한국에서 같이 중학교에 입학했던 친구들도 올 3월에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우리 아들의 교복은 아직도 새 옷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걸려있는데 말이다.

아들이 떠난 후 벌써 세 번째 맞이하는 주인공 없는 생일이다. 나는 아들이 태어난 이후로 단 한 번도 아들의 생일을 슬며시 넘어가 본 적이 없다. 원래 생일에 진심인 편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첫 아이였기에 돌잔치부터 마지막 열세 살 파자마 파티까지 정말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이가 생일을 만끽하고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인지 매년 아들 없는 아들의 생일이 돌아오면 그리움이 넘쳐 가슴이 아려 온다. 

아들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던 어느 날은 이런 생각을 해봤다. 단 한 가지라도 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하고...... 더럽게 말을 안 들어 떨어져 지내고 싶을 만큼 나를 힘들게 했던 적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내 아들에게서 흠집은커녕 먼지 한 톨 찾아낼 수 없었다. 오히려 일찍 생을 마감한 천재 아티스트의 유작처럼 날이 갈수록 더욱 빛이 나고 특별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고 신해철 님의 "일상으로의 초대"라는 곡을 띄어본다. 원래 아는 곡이었지만 아들과 헤어진 후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나는 거의 꺼이꺼이 오열을 하면서 이 노래를 들었다. 자식 잃은 부모를 울릴 의도로 만들어진 노래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별일 없는 잔잔한 하루하루, 매일 비슷비슷한 소소한 일상조차 내 아들과 함께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고 잔인해서 진정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게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내가 살아있는 내내 그럴 것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절망적이기까지 했다.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생각에 잠길 때

요즘엔 뭔가 텅 빈 것 같아

지금의 난 누군가 필요한 것 같아

친굴 만나고 전화를 하고

밤새도록 깨어있을 때도

문득 자꾸만 네가 생각나

모든 시간 모든 곳에서 난 널 느껴


내게로 와 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거야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사랑하는 내 아들 준아, 너 역시 몹시 기다렸을 너의 열여섯 Sweet Sixteen 생일인데 이 엄마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구나. 열여섯은 참으로 눈부시고 달콤한 나이인데…... 네가 있는 그곳에서도 그 달콤함을 느낄 수 있을까? 아들아, 고통을 피하기만 하면 덜 아플 수는 있지만 결국 그런 삶은 반쪽짜리 인생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 열여섯 내 아들을 마주할 수 없는 오늘이 너무 아프고 시리지만 엄마가 무작정 피하지 않고 잘 살아볼게. 엄마가 언젠가 이 세상살이 마치고 네 곁으로 가려면 부단히 열심히 그리고 올곧게 살아야 하니깐. 나의 준아, 너의 sweet sixteen을 온 마음으로 축복한다. 엄마 꿈에 와주면 꼭 안아줄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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