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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지도 만들기
04/23/18  

몇 해 전에 가주 하원의원에 출마했던 로컬정치인인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라미라다시 선거구역을 위한 지도 만들기’주민 공청회에 참석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인구 5만이 조금 넘는 작은 도시에서 구역을 나눠 각 구역에서 시의원을 뽑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인지라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 내 마음을 읽고 있었는지 친구는 공청회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참석을 권유했다.

 


미국에서는 최근 각 도시에서 선거구역을 나누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작은 도시들의 경우, 종전에는 구역을 나누지 않고 시 전체에서 시의원을 선출했다. 남미계 출신들의 일부 단체들은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주민수와 비례해 볼 때 상대적으로 남미 출신 시의원이 적은 것은 불합리한 선거제도 때문이라며 시를 시의원 숫자대로 구역을 나눌 것을 요구했다. 처음에 몇 몇 시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며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러자 그 단체는 법원에 판결을 요구했고 법원은 그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 결과 부에나파크시가 다섯 개의 구역으로, 풀러턴시도 다섯 개의 구역으로 나뉘었다. 이런 과정에서 각 인종과 기존 시의원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구역을 나누기 위해 치열한 물밑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한인들도 기왕이면 한인 출마자들에게 유리하도록 한인 밀집지역을 한 구역으로 묶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다.

 

 

라미라다시도 이러한 과정을 겪고 있었다. 라미라다시에는 다섯 명의 시의원이 있다. 그동안 시 전체를 하나의 선거구로 하여 다섯 명을 선출했으나 이제는 다섯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각 구역에서 1명씩의 시의원을 선출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반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구역을 나누어 선출하는 것은 시의원이 아니라 구역을 대표하는 구역의원을 선출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것처럼 법원의 판례가 하나 둘 쌓이면서 시의 크기에 관계없이 선거구를 나누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10개의 선거구획안이 나왔다. 라미라다시의회는 주민들 전체에게 도움이 되도록 합리적인 선거구역을 획정하기 위해 몇 차례 주민공청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선거구획안을 만든 사람들은 저마다 이런저런 근거를 들어 자신의 안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지만 대부분 개인이나 단체, 특정 인종에게 이익이 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친구는 자신이 만든 선거구획안 지도를 갖고 나와 다른 사람들의 것과 비교하면서 설명했다. 우선 친구는 다섯 개의 구역마다 라미라다시의 커다란 공공기관이 하나씩 들어가게 획정했다. 예를 들면 로욜라대학교, 라미라다 예술회관, 라미라다시청, 각 초, 중, 고등학교, 커다란 쇼핑몰 등을 적절하게 안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지도들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것은 시티의 재정수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더스트리얼 지역을 다른 9개의 지도처럼 한 구역으로 하지 않고 두 개의 구역으로 나눈 것이다. 이권이 개입될 가능성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둘로 나누는 것이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부정에 대비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안이라는 주장이었다. 한인이 많이 사는 구역에는 라미라다 골프코스, 라미라다 하이스쿨, 로스코요테스 주니어하이스쿨이 포함되어 있었다.

 

 

친구는 남미 출신의 이민자였지만 남미계에게만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획정한 것이 아니었다. 인종이나 이권에 관계없이 라미라다시 주민들 모두에게 합당한 획정안이라고 생각됐다. 주저 없이 친구의 지도가 채택되도록 협조하기로 했다. 라미라다시 주민공청회에 한인들의 참석을 권장하고 한인들의 의사를 밝히기로 했다. 우선 주민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분들께 전화를 했고, 한인 정치력 신장을 위해 애쓰는 단체인 iCAN의 차윤성 이사장과 찰스 김 회장에게도 협조를 요청했다. 기꺼이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주민공청회에는 선거구획안을 만든 사람들이 나와 자신의 안이 합리적이며 이상적이라는 주장을 펼쳤고 이에 동조하는 이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친구도 자신이 선거구역을 나눈 이유에 대해 설명했고, iCAN의 차윤성 이사장이 이에 동조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리고 다음날 시의원 중의 한 사람을 만나 우리가 지지하는 선거구획안이 왜 합리적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그 안이 채택되도록 협조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 시의원도 10개의 안 가운데 가장 완벽한 안이라며 다른 시의원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서 채택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11월 8일 최종 심의를 하는 주민공청회에서 친구의 안이 채택되었다.

 

 

주민 현안에 대한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주민들 스스로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 결정하는 성숙한 민주주의, 라미라다시의 주민공청회는 바로 그 민주주의를 확인하는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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