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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04/23/18  

어릴 때 아주 좋아했던 친한 친구 A에게 일급 비밀을 조심스레 털어놓으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고 받아두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 우연히 길거리에서 A의 친구 B를 만났는데 B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비밀을 내뱉는 순간 정말 뒷통수를 얻어맞는 심정이었습니다. 나는 A를 통해서만 B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 친분이 없었고 아마도 A는 내가 B를 따로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나의 비밀을 누설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때의 실망과 충격은 나에게“입조심, 말조심”이라는 교훈을 남겨주었습니다. 평소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말조심이란 상당한 훈련을 필요로 했지만‘이 말을 이 사람에게 해도 될까?’하는 생각이 들 때면 무조건 멈추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유혹의 순간이 찾아와도 최대한 자제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꽤 입이 무겁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불리기도 했지요. -물론 중간중간 실수가 전혀 없었다고 말하진 못합니다.-
 
나의 지인 중 한 분은 여러 가지로 배울 점이 많아 내가 늘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이나 말에 있어서는 항상 아쉬움을 남기곤 했습니다. 그분이 하는 이야기는 80% 이상이 모두 타인에 대한 험담이었습니다. 누구나 남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지만 남의 험담으로 대화의 대부분을 허비하고 있다 보면 듣고 있던 내 자신마저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엔 늘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하고 또 머리가 빙빙 돌곤 했습니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험담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그저 남이 아닌 친한 친구이거나 나와도 인연이 있는 측근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럴 때면 정말 듣고 있는 입장도 난처합니다. 무조건 조용히 하라며 입을 다물게 할 수도 없고 맞장구를 치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기 때문에 그저 묵묵히 듣고 있어야 했습니다. 어쩌다가“그게 아닐 수도 있으니 너무 나쁘게 생각 말라!”며 소용없는 충고도 해 보았지만 정말 끔직하리만큼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말 많은 친구를 멀리 하라!’고들 하더니만 없는 말은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내 앞에서 쉴 새 없이 남의 험담을, 그것도 측근들을 험담하던 그분은 결국 구설수에 휘말려 주위 사람들을 잃고 나에게도 혼자 절교를 선언하고는 어느날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물론 무조건 말이 많고 입단속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성품이 바르지 못하고 악한 사람이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내 좋은 친구 중에도 입이 근질근질한 것을 잘 참지 못하는 이들이 몇 있지만 착하고 선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입 조심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내가 알아서 주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종종 널리 널리 소문이 퍼지길 원하는 좋은 소식들은 누구보다 그들에게 먼저 귀뜸을 해주곤 합니다. 좋은 소식이 날개를 달고 훨훨 멀리 멀리 날아 갈 것을 알기 때문이죠.
 
우리 모두에게는“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은 욕구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대나무밭에서 복두장의 설마했던 그 외침이 바람이 불 때마다 다시 울려퍼졌듯이 내 입을 떠난 말은 내 의도와 상관없이 생각보다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또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말 한마디에 웃고 말 한마디에 웁니다. 말조심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말이 잘못되지 아니하게 마음을 쓰는 일”이라고 나와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엔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잘못되어 나뒹구는 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가끔은 우리가“관심”이라고 미화시킨 남들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남의 불행을, 안타까운 사실을 마치 걱정하듯이“쯧쯧~”혀를 차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이야기 하기보다는 과연 이것이 나의 사랑이고 관심인지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나의 말들이 잘못되지 않고 제 길을 찾아 갈 수 있도록 마음 쓰는 연습을 해야할 듯합니다. 어제 내가 한 말들이 어디선가“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며 울려퍼지고 있진 않은지…… 어디선가 천냥 빚을 갚고있진 않은지……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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