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동벌이(黨同伐異)
04/23/18  

오랜만에 선배를 만나 식사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화제는 자연히 한국으로 옮겨졌다. 선배는 몹시 격앙된 목소리로 신문과 라디오, TV 등에서 보도하고 있는 것을 앵무새처럼 그대로 이야기 했다.

 


박근혜 씨가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 출마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썼던 타운뉴스 칼럼을 읽고 전화로‘당신은 좌파에 가까운 사람이 아닌데 왜 그런 글을 썼냐?’고 하면서‘왜 빨갱이들에게 동조하는가?’하고 호령했던 선배였다.

 

 

그때 일은 까맣게 잊고 한국의 시국에 대해 말하면서 입에 담기 어려운 표현을 써가며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했다.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선배가 자기 생각이라며 얘기하는 것들 대부분은 그의 생각이 아니라 각종 언론 보도 내용 중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 자기 생각이라고 믿고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살이가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은 알았으나 요즈음처럼 힘든 적은 없었다. 특히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이 되고 말았다. 수많은 매체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하나의 흐름 속으로 몰아간다. 라디오, TV, 신문, 거기다 각종 SNS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 주도해가다 보니 그 커다란 힘에 거슬리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살이가 힘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큰 흐름과 다른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들 일부는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느끼기도 하고 또, 얼마 전 미국 대선에서 나타난‘샤이 트럼프’들처럼 자신의 생각이 드러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을까 봐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다. 심한 경우 자신의 잘못된 사고 구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 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다른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현상은 언론과 SNS 등이 자신들의 의도대로 세상을 만들어 가려고 하는 데서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즉 언론과 SNS가 일반 대중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견해와 입장을 따르도록 암암리에 강요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언어폭력을 비롯해서 개인 정보를 파헤쳐 인식공격을 가하고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들까지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예사이다. 문자 그대로 당동벌이(옳고 그르고 간에 같은 사람은 편들고 다른 파의 사람을 배격하는 것)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커다란 물줄기처럼 흘러가는 세력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살 수밖에 없다. 아니 열어서는 절대 안 된다. 입을 열면 그대로 매장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SNS상에서 가해지는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다.

 

 

현대인들의 대부분은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 선택하며 살 뿐이다. 그저 언론과 SNS에서 떠들어대는 것 중에서 입맛에 맞는 것을 고르면 된다. 마치 장보러 가서 물건을 고르듯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각종 뉴스들 중에서 그럴 듯한 것을 골라 내 것으로 삼으면 된다. 언론도 자신들의 보도에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이렇게 했다는 말이 있더라’라고 하면 얼마든지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 사실 보도와 공익 추구라는 이념은 잊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것만을 고민하는 이익집단이 되어 버린 지는 이미 오래다. 적당히 시세에 편승하여 자기의 입장이라며 전하는 뉴스 대부분은 그때그때 편한 대로 권력에 기대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하면서 회사의 이익이나 사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각종 보도를 접하면서 왜 이렇게 보도를 하는 것일까, 사실에 근거하여 기사가 작성된 것인가, 그런 기사를 쓰는 의도는 무엇인가, 진실은 무엇인가 등을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겉에 보이는 것과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이 다를 수도 있기에 보다 더 신중히 읽고 판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수의 물결에 휩쓸려 우세한 여론에 편승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조차 모르면서 떠다니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약속이 있어서 일어섰지만 선배는 차를 세워 둔 곳까지 따라오면서 얘기를 멈추지 않았다. 다음에 시간을 내서 또 만나기로 하고 차문을 여는 사람의 뒤통수에 대고 선배는 한 마디 덧붙였다.“현 시국에 대해 글로 잘 좀 쓰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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