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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좌담(新年座談)
02/06/23  

선배들 모임에 초대 받아 식사하면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고 있었다. 며칠 전,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표가 두 번째 검찰 조사를 받았고,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1심 선고를 받았던 바로 그 다음 날이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화제는 자연히 이들과 관련된 한국 정치로 흘러갔다. 그날 자리를 마련한 선배가 신문과 라디오, TV 등에서 보도하고 있는 내용들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자 좌중은 열띤 토론장이 되었다.

처음 얘기를 꺼낸 선배 이야기의 대부분은 각종 언론 보도 내용 중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 옮기고 있었다. 함께 있는 사람들 모두 당연히 자기와 같은 생각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듯했다. 설령 그 선배와 다른 견해를 갖고 있더라도 입을 열어서는 안 되는 분위기였다.

그때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선배가 한마디 했다. “정치 얘기와 종교 얘기는 자리를 봐가면서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자 다른 선배가 말했다. “이 정도 했으면 됐다. 더 얘기 나누고 싶은 사람들은 자리를 옮겨서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스스로 생각하면서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이 되고 말았다. 수많은 언론 매체들이 사람들이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하나의 흐름 속으로 몰아간다. 라디오, TV, 신문, 거기다 각종 SNS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 주도해가다 보니 그 커다란 힘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힘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큰 흐름과 다른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들 가운데는 혹시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 받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 자신의 잘못된 사고 구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른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현상은 언론과 SNS 등이 자신들의 의도대로 세상을 만들어 가려고 하는 데서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즉 언론과 SNS가 일반 대중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견해와 입장을 따르도록 암암리에 강요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언어폭력을 비롯해서 개인 정보를 파헤쳐 인신공격을 가하고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들까지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예사이다. 문자 그대로 당동벌이(黨同伐異: 하는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뜻이 같은 사람끼리는 한패가 되고,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배척하는 것)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커다란 물줄기처럼 흘러가는 세력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살 수밖에 없다. 아니 열어서는 절대 안 된다. 입을 열면 그대로 매장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SNS상에서 가해지는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 선택하며 살 뿐이다. 그저 언론과 SNS에서 떠들어대는 것 중에서 입맛에 맞는 것을 고르면 된다. 마치 장보러가서 물건을 고르듯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각종 뉴스들 중에서 그럴 듯한 것을 선택해 내 것으로 삼으면 된다. 언론도 자신들의 보도에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했다는 말이 있더라’라고 하면 얼마든지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 사실 보도와 공익 추구라는 이념은 잊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것만을 고민하는 이익집단이 된 지 이미 오래 되었다. 적당히 시세에 편승하여 자기의 입장이라며 전하는 뉴스 대부분은 그때그때 편한 대로 권력에 기대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하면서 회사의 이익이나 사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각종 보도를 접하면서 우리들은 ‘왜 이렇게 보도를 하는 것일까’, ‘사실에 근거하여 기사가 작성된 것인가’, ‘그런 기사를 쓰는 의도는 무엇인가’, ‘진실은 무엇인가’ 등을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겉에 보이는 것과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이 다를 수도 있기에 보다 더 신중히 읽고 판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수의 물결에 휩쓸려 우세한 여론에 편승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모르면서 떠다니게 될 것이다.

식당에서 나와 차 세워 둔 곳까지 가는 동안에도 선배들은 얘기를 멈추지 않았다. 작별인사를 하고 차문을 여는 내 뒤통수에다 대고 선배 한 분이 덧붙였다. “현 시국에 대해 글로 좀 잘 쓰게나.”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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