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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을 입고
02/06/23  

올 3월 중학생이 되는 딸아이는 나의 모교에 입학 예정이다. 어제 딸아이의 교복을 맞추러 30년 만에 내가 다녔던 중학교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학교의 상징이었던 공작새가 있던 자리에 증축한 새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리노베이션 되어 전과 달라졌지만 내가 다녔던 학교에 들어서자 30년 전 여중생이었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나 역시 교복세대인데 그때 우리 교복은 참 형편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너무하다 싶은 게 아무리 추워도 동복 위에 패딩을 입을 수 없고 반드시 코트를 입어야 했는데 그마저도 색상이나 디자인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치마는 퍼지는 주름치마라 한겨울이면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데 치마 안에 레깅스나 바지를 입을 수도 없고 반드시 지정된 촌스러운 하얀색 스타킹을 신어야만 했다.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고, 불편하고 답답한 교복을 싫어했다. 사복을 입고 등교할 수 있는 소풍날이면 일부러 새 옷을 사 입을 정도로 사복에 대한 갈망이 심했었다. 하지만 미국으로 이민 가며 다시는 입을 일이 없겠지 하고 교복을 챙기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래서 지금도 교복은 그냥 학교 다닐 때 입던 지겨운 유니폼 그 이상의 애틋함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들의 감성을 반영하여 교복 패션이라는 것도 생겨났다. 놀이공원이나 관광지 근처에 교복 대여점들이 생겨난 것인데 교복에 대한 추억이나 로망을 자극해 학생이 아니어도 교복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거나 놀이공원에 가는 것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 나도 학창 시절 교복을 다시 한번 입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긴 했다. 나이 들어 너무 주책인가 싶기도 하지만 리마인드 웨딩이라며 웨딩드레스를 다시 입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것보다는 교복이 수월할 것 같기도 하고...... 

아,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우리 때 입던 체크무늬 교복은 다시 보기 힘들 것 같다. 올해부터 체크무늬 교복 디자인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버버리 브랜드에서 버버리 체크무늬의 지식재산을 지키기 위한 법적인 액션을 취했고 한국학생복산업협회에서 버버리 측과 조정을 거쳐 해당 디자인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단다. 그래서인지 딸의 교복에서도 체크무늬를 찾아볼 수 없었다. 교복이 마음에 드는지 잔뜩 신이 나있는 딸을 보니 나까지 덩달아 격앙되는 기분. 

옛날에 즐겨 부르던 DJ DOC의 노래 중에 "여름 교복이 반바지라면 깔끔하고 시원해 괜찮을 텐데"라는 가사를 들으며 '한국에서는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세상이 달라져서 실제로 여름 교복이 반바지인 학교들이 꽤 있다. 그리고 불편한 교복 대신 체육복이나 생활복으로 등교 가능한 학교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 때보다 조금 더 편하고 자유로워진 교복을 입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교복을 입은 딸의 얼굴이 환하다 못해 반짝반짝 빛난다. 대한민국 중고등학생들은 입시 지옥에서 불행한 학창 시절을 보낸다고들 하던데 부디 그것이 전부가 아니길 바란다. 나의 딸이 형형색색 다채로운 꿈을 펼치며 찬란한 시간을 보내게 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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