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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02/13/23  

지금 한국에서는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과 지하철 무임승차로 인한 재정 적자가 심각하다며 노인 연령을 상향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노인 기준 연령 규정을 현행 65세 이상에서 70세 혹은 그 이상으로 높이자는 것이다.

한국은 현재 65세 이상과 소득 하위 70% 계층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한다. 그런데 모든 연금이 그렇듯이 이 기초연금도 해마다 수급 대상이 확대되고, 지급 금액도 인상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해마다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늘고 있으며, 지급액도 물가 상승에 따라 조정되기 때문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기초연금은 30만 7500원에서 2023년, 올해는 32만 3180원으로 인상됐으며 수급 대상자도 같은 기간 612만 명에서 656만 명으로 늘었다. 따라서 관련 예산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올해 책정된 기초연금 예산은 22조 5000억 원인데, 2030년에는 연금 지급액이 40만 원으로 인상된다고 가정하면 52조 원, 2040년에는 102조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2040년에는 올해 한국의 총지출 예산, 639조 원의 15%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을 기초연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편 서울시는 최근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로 인한 연평균 손실액이 3천 236억 원으로 평균 적자 총액인 7천 449억 원의 절반 수준”이라며 “1984년 65세 이상 무임승차 제도를 시작할 당시 4% 남짓이던 고령인구가 이제 곧 20%를 넘기게 된다. 인구의 5분의 1이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만큼 70세 정도로 기준 연령을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1984년 5월, 기존 70세였던 노인 기준을 65세로 내려 노인들이 지하철을 완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시는 이와 함께 노인 무임승차로 인한 서울지하철의 손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지하철 요금 인상, 손실분에 대한 중앙정부 지원등도 거론했다.

서울시가 서울지하철 손실 문제와 관련해 제안한 세 가지 방안 모두 쉽게 결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먼저 노인 기준 연령 상한은 지금까지 노인 복지 혜택을 누려왔던 많은 노인들에게서 그 혜택을 박탈해야 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지난달 한국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2021년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노인빈곤율)은 37.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았다. 상대적 빈곤율은 전체 노인 중 소득 수준이 중위소득의 50%(상대빈곤선) 이하인 사람의 비율을 일컫는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2020년 38.9%로 처음으로 40% 이하로 내려갔다. 그렇지 않아도 이처럼 노인빈곤율이 높은 현실에서 노인 일자리 등 노인 복지 관련 정책 시행 없이 그동안 노인 복지 혜택을 누려왔단 연령층에게 더 이상 그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어깨에 무거운 돌덩이를 얹고 살아가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

지하철 무임승차는 노인 특히, 수도권 거주 노인들에게는 아주 큰 복지 서비스이다. 지하철을 타면 수도권은 물론 충청남도 천안, 아산까지도 무임으로 갈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지하철을 타고 서류나 작은 물건을 배달하는 실버택배업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노인들도 있다.
여기에 더해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지하철 무임승차는 노인의 활동을 증가시켜 자살 및 우울증, 교통사고 등을 감소시키는 효과까지 있어 의료비를 절감하고 관광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이들 편익을 합한 경제적 효과는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 비용보다 훨씬 크다. 노인 기준 연령 상향 조정이 서울지하철의 적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지하철 요금 인상의 문제는 더 많은 사람들의 삶과 직결돼 있다. 공공재 이용 요금 인상은 국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요금이 인상돼도 어쩔 수 없이 이용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공공재이다. 지하철 요금이 올랐다고 그보다 더 비싼 택시를 타고 다닐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남은 대책은 손실분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뿐이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모든 정부는 연말이면 다음 한 해 동안 정부를 꾸려나갈 예산을 편성한다. 그런데 한 해 살림을 마무리할 시점이 되면 사용하지 않은 예산들이 발생한다. 이런 예산은 편성 항목을 변경해 급히 집행되거나 다음 해로 이월된다. 애초에 소요예산 예측이 잘못된 것이다. 예산 편성을 더 꼼꼼하게 했더라면 이런 결과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더 꼼꼼하고 합리적인 예산 편성을 통해 남는 예산을 노인복지에 지원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OECD 국가 노인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한국 노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하다.

가난한 노인이든 넉넉한 노인이든 그들은 모두 과거 우리 사회를 이끌었던 어른들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존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노인 문제에 지방정부, 중앙정부가 따로일 수 없다.

조선의 가객 정 철의 시조로 이 글을 맺는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나는 젊었거니 돌이라 무거우랴/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까’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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