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 그치면
04/23/18  

병신(丙申)년의 끝자락이 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어제 오후부터 시작된 비가 밤새 그치지 않더니 날이 밝은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마치 올해 벌어졌던 기억하기 싫은 것들을 모두 씻어버리기라도 할 기세이다.

 
참 많은 일들이 벌어졌던 한해이다. 그 가운데는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것들도 있지만 생각만 해도 진저리처지도록 마음 무거운 것들도 적지 않다. 지금 고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명‘비선실세 국정 농단’을 비롯해 그로부터 파생된 일련의 정치적인 일들도 두 번 거론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그래도 좌절과 분노를 딛고 희망의 역사를 써 가고 있는 한국민들의 모습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민중은 개·돼지와 같다”는 말까지 들어가면서도 나라가 혼란에 빠질수록 언제나 더욱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마음으로 희망의 불꽃을 들어 올리는 한국민들은 이역만리에서 살아가는 우리 이민자들에게 든든한 우군이자 희망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쏘아 올리는 희망의 불빛은 오는 정유(丁酉)년 닭의 해에도 꺼지지 않을 것이다.

  

닭 이야기를 하려니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홍성담 화백이다. 그는 2014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서 ‘세월 오월’이란 작품으로 논란이 됐던 화가이다. 이 작품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을 출산하고 있는 내용이 포함된 대형 걸개그림으로 원래는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해 문제가 되자 허수아비 대신 닭의 형상으로 고쳤다. 하지만 광주비엔날레 측의 전시 불가능 입장에 막혀 대중 앞에 선을 보이지 못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예술을 가장해 정치인을 비방하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예술계에서는 정치인들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것은 예술의 영역이고 법적인 잣대로는 처벌할 수 없다며 팽팽히 맞섰다.

  

이 그림이 문제가 되자 결국 당시 전시회의 책임자였던 윤범모 큐레이터와 광주 비엔날레 이용우 대표가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검찰은 홍 화백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무혐의 처분 후 홍 화백은“정치인들을 신성시하고 절대화하면 국가주의 파시즘이 번식하는데 유독 우리나라는 정치인에 대한 환상이 많다.”며“정치인들을 견제하고 풍자하고 조롱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민주주의가 불가하다. 이번 처분이 당연하면서도 혹여 표현의 자유가 만개한 것처럼 보일까봐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외국의 언론들에게도 큰 관심사였다. 뉴욕타임스는‘An Artist Is Rebuked for Casting South Korea,s Leader in an Unflattering Light-한국 대통령을 비호감으로 그려 화가 질책 받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고 박정희 시대부터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그림을 통해 저항해온 홍성담씨의 삶과 그림의 수난을 상세하게 전했다.

  

아울러‘세월 오월’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이 세월호 참사와 광주학살 두 가지를 모두 암시하고 있다고 전하며, 이 논란으로 인해 한국에서의 예술적 표현의 한계에 대한 오랜 기간에 걸친 질문이 다시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권에서의 한국이 과연 독재국가인가, 아니면 자유가 허용되는 민주주의국가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독재자 아버지를 두고, 그 유신독재의 잔재들에 의해 대통령으로 추앙된 박근혜는 결국‘독재자’가 아닌가? 라고 물었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홀로 자신을 가둬 둔 은둔의 독재자일지 모른다. 최근 청문회 등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관저에서 홀로 보냈다고 한다. 집무실에서 일하지 않고 관저에서 서면보고를 받으며 지냈다니 어찌 생각하면 병에 걸린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기도 한다. 어머니를 흉탄에 잃고 아버지마저 총탄에 잃은 후 18년을 은둔하다시피 살다가 다시 세상으로 나와 정치판에서 세월을 보내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어쩌면 심각한 마음의 병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통령 아버지가 보여준 모습들을 상기하며 자신도 아버지를 흉내내려한 것도 병이라면 병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어리석은 닭에 비유됐는지도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이 닭으로 희화화 되고 있는 것과 상관없이 닭은 새벽을 부르는 동물이다. 빛을 이기는 어둠은 없다. 새벽이 오면 어둠은 사라지고야 만다. 거대한 태양은 자신 혼자만으로도 구석구석 숨은 어둠을 찾아 물리칠 수 있지만 작은 불빛 하나만으로는 어둠을 모두 몰아낼 수 없다. 하지만 작은 불빛들이 모이고 모이면 마침내 어둠을 물리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많은 티끌일지라도 가녀린 빗줄기를 이겨낼 수 없다. 그래서 비 갠 후 티끌들이 사라지면 세상은 더욱 깨끗해진다.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한국의 촛불이 결국 어둠을 몰아낼 것이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세상은 더욱 투명하게 빛이 날 것이다. 닭의 울음소리가 불러올 새벽은 멀리 있지 않다. 그래서 더욱 더 정유년, 새해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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