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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박물관
02/20/23  

LA 리틀토쿄에 있는 일미박물관(Japanese American National Museum, www.janm.org)에 정치·경제 단체와 정부기관 등 23개 주요 단체들이 540만 달러의 후원금을 전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잊고 있었던 옛일이 떠올랐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91년 여름, 학생연수단을 인솔해 오클라호마 에드몬드(Edmond)시에 있는 ‘The University of Central Oklahoma(UCO)’에 다녀온 적이 있다. 학생들이 주민들 집에서 한 달 동안 민박을 하면서 어학연수를 받고, 뉴욕, LA 등 미국의 주요 도시들을 돌아보고 오는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학교장이며 설립자였던 이원희 박사가 출장에서 돌아온 내게 물었다. 미국을 돌아보고 무엇을 느끼고 왔는가.

“1987년 알래스카 보이스카우트 캠프에서 한 달 생활하고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 것 가운데 하나는 미국은 가는 곳마다 크고 작은 박물관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학생들이 연수를 받았던 대학에도 박물관이 있었다. 우리도 학교에 박물관을 만들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여러 가지 자료나 물건들을 수집하고 보관하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 박사는 망설임 없이 재단 안의 6개 학교 학생들과 교사들로부터 학교와 관련된 각종 자료들을 기증받아 학교 내에 작은 역사 박물관을 만들었다. 교내에 역사박물관을 만든 것은 당시로서는 꽤 획기적인 일이었다.

최근 540만 달러의 후원금을 받은 일미박물관 측은 지원금을 박물관 노후 기자재 교체, 미 연방 정부의 일본계 미국인들 격리 당시 수용소에서 먹었던 음식 체험 프로그램, 초기 일본계 이민자의 유산 전시회, 미술 전시회, 다큐멘터리 제작 등에 사용할 것이라고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일미박물관 소식은 부러움과 함께 건립 계획 확정 후 10년 넘도록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우리 한미박물관(Korean American National Museum)의 현 상황과 비교되어 한숨을 자아내게 했다.

한미박물관 건립 부지는 LA 6가와 버몬트 서남쪽 공영주차장이다. 2013년 LA시가 50년 무상 장기임대로 한미박물관 건물 부지를 선정해주었지만, 10년째 착공조차 못 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부분 ‘약정’ 상태인 연방정부 지원기금 700만 달러, 캘리포니아주 지원기금 400만 달러, LA시 지원기금 350만 달러 등도 동결되어 있는 상태다. 이 기부금들은 모두 ‘착공’을 전제’로 약정되었기 때문에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땅과 돈이 주어졌는데도 10년이 넘도록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남가주에 한인 박물관이 건립되면 그곳에 캘리포니아 이주 한인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 왔는가를 보여주는 문화적, 학술적, 역사적 사료들을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수집, 전시, 보관할 수 있다. 또 이를 통해 후손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배양할 수 있고, 타 민족들에게도 미주 한인들이 이민자로서 미국 사회 발전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지 널리 알릴 수 있어 박물관 건립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한다. 하물며 뜻이 있고, 부지도 있고, 돈도 있는데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이는 현 한미박물관이사회 구성원들 자체가 박물관 건립 추진 의지가 박약하고, 또 힘차게 밀고나갈 지도자의 부재가 그 원인일 수도 있다.

이번 기회에 필자는 한미박물관 건립을 앞장서서 이끌 적합한 인사 두 명을 추천한다. 한 사람은 한인역사박물관 민병용 관장이다. 그는 한인 이민사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데 헌신해온 역사학자이다. 다른 한 사람은 과거 한미연합회를 창설했고 현재 한인 정치력 신장 단체인 아이캔(iCan)을 이끌고 있는 찰스 김 회장이다. 지금은 연방하원의원 영 김의 남편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그는 대학 졸업 후 줄곧 한인사회의 봉사단체들에서 일해 왔다. 두 사람 모두 LA 한인사회의 역사를 아주 잘 아는 산 증인으로 상당히 많은 양의 한인 이민사 자료도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이 힘을 합쳐 한미박물관 건립을 추진한다면 그 어느 커뮤니티 박물관보다 더 훌륭한 박물관이 한인 타운 안에 들어설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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