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홈으로 나는야 1.5세 아줌마
친구의 암을 앎
02/27/23  

3월에 같이 10Km 마라톤에 나가기로 한 친구가 "나 아무래도 이번에 못 뛸 것 같아." 하며 단톡방에 말문을 열었다. 지난 5년간 매일 시도 때도 없이 시시콜콜한 것부터 제법 묵직한 인생 이야기까지 나누는 친한 친구 여섯 명이 모인 대화방이었다. 친구의 말이 어제 유방 조직검사 결과를 보고 왔는데 암인 것 같단다. 무슨 암 커밍아웃을 마치 "나 운동하다가 발목을 삐끗했어"와 같은 뉘앙스로 이렇게 뜬금없이 대수롭지 않게 하는지 평소 엉뚱한 내 친구다웠지만 과연 내가 아는 그 암이 맞는지 몇 번이나 확인을 해야만 했다. "암이라고?! 네가 암이라고?"

30대가 되면서부터 지인 중에 혹은 건너 건너 유방암에 걸렸다는 사람들의 소식이 이따금씩 들려왔다. 대부분 수술을 하고 완치가 되었고 다시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듯 보였지만 상상하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친한 친구가 암 판정을 받은 것은 내게도 처음이다. 두세 번째가 된다고 나아질 것 같지는 않지만 나도 너무 순식간이라 경황이 없었고 유방암에 대해서 생각보다 너무 아는 것이 없어서 틈날 때마다 검색창을 드나들며 친구가 겪는 과정을 글로 접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 친구가 작년 크리스마스 무렵에 오른쪽 유방에 이상한 혹이 보여서 조직검사를 할 예정이라는 말을 했을 때도 심각하지 않게 여겼다. 그녀는 대형 병원 간호사 출신으로 우리나라 여성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치밀 유방이라 초음파 추적 검사가 필요하다는 안내를 받은 후 꽤 열심히 정기적으로 추적 검사를 해오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런 증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혹을 바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조직 검사 결과가 안 좋게 나와 함께 달리지 못한다고 알린 것이 1월 15일이었는데 보름 만에 대형 병원 전문의에게 외래 진료를 받고 바로 MRI 촬영을 하고 결과가 나와 다시 의사를 만나고 오더니 수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만 해도 아직 1cm도 안되어서 조기 발견이라고 하더니만 별안간에 전절제 수술을 받아야 하고 림프절 전이도 있어서 유방암 3기란다. 그렇게 친구는 유방암 판정을 받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순식간에 수술까지 받게 되었고 지금은 재활병원에 입원 중이고 3월부터는 항암치료도 시작되는 모양이다. 

이렇게 폭풍처럼 몰아치는데도 친구는 신기할 정도로 큰 동요 없이 꽤나 침착해 보였다. 한 번쯤은 괴롭다거나, 억울하다, 슬프다, 그것도 아니면 아프다, 속상하다 정도의 감정은 내비칠 만도 한데 톡으로도 면회 중에도 친구는 한결같이 씩씩했다. 수술하러 들어가는 친구를 보고 온 친구가 말하길 수술실로 들어가면서도 손을 흔들며 밝게 웃고 있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괜스레 눈물이 났다. 그러고 보니 지난 5년 동안 그 어떤 일에도 거의 힘든 내색을 해본 적 없는 그녀는 전형적인 K장녀의 표본이었다.  

하지만 이런 친구의 아픔은 왠지 더 다가가기가 어렵다. 힘들 때 울면 차라리 함께 울어줄 텐데... 힘없이 주저앉아버리면 손이라도 잡아주고 어깨동무라도 해줄 텐데... 온 힘을 다해 버텨내며 괜찮다고 말하는 친구에게는 무슨 말이 적절할지 오히려 망설여진다. 유방암은 생존율이 높은 암이니 걱정 말라며 씩씩하게 격려를 해주면 도움이 될까? 얼마나 힘드냐며 부둥켜안고 내가 더 크게 울면 속이라도 시원해질까? 소중한 친구들이 힘들 때 힘이 되어주겠다고 다짐하며 살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닥치니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선뜻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기도밖에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무능하게 느껴져서 기도만큼이나 한숨도 많이 내쉬었다. 

오늘이 친구 생일이라 어제저녁 친구들과 병원을 방문해 잠시 얼굴을 보고 왔는데 그녀는 여전히 활짝 웃고 있었다. 며칠 전 암 수술을 마치고 나온 환자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나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나타난 그녀를 보며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친구가 함께 하지 못하는 10Km 마라톤, 그 친구를 기억하고 응원하며 가슴에 핑크 리본을 달고 달리겠다고. 그렇게 계속 그녀를 지지하며 그녀의 유방암 완치를 향한 여정 내내 함께 하겠다고 말이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