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장수 이야기
04/23/18  

한 마을에 빵장수가 살았다. 그는 이웃에 사는 가난한 농부에게 매일 아침 버터를 샀다. 어느 날 농부가 가져온 버터를 보니까 정량보다 조금 모자라 보였다. 빵장수는 그날부터 며칠 동안 농부가 가져 온 버터를 저울로 일일이 달아보았다. 예측한 대로 모두 정량 미달이었다. 화가 난 빵 장수는 버터를 공급하던 농부를 법정에 고발했다.

  

재판관은 농부의 진술을 듣고 놀랐다. 농부의 집에는 저울이 없었다. 그는 빵장수가 만들어 놓은 1파운드짜리 빵의 무게에 맞추어 버터를 자르고 포장해 납품했던 것이다. 빵장수가 이익을 더 남기기 위해서 1파운드짜리 빵의 규격과 양을 조금 줄였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농부는 줄여서 만들어진 빵에 맞추어서 버터를 만들었으니 당연히 그 버터가 함량 미달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전에 들었던 빵장수 이야기가 생각난 것은 30여 전에 가르쳤던 제자가 보내준 카톡 때문이었다. 비가 온종일 내리던 지난 주 수요일, 한 제자가 사무실로 찾아와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그날 저녁, 제자는 한국에 사는 자기 선배에게 선생님과 만나 점심 먹었다는 얘기를 했더니 선배가 자신도 그 선생님에게 배웠다며 아래의 내용을 답으로 보냈다고 한다.

  

‘미국에 계시는구나. 그 선생님과는 추억이 많아. 그 당시 우리에게 유신교육 시키시느라고 고생하셨지. 안부 전해줘. 건강하시지?’

  

제자가 보내준 메시지를 읽으며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유신교육 시키느라 고생하셨지.’까맣게 잊고 살았다. 가슴에 새겨진 흉터가 아려왔다.1976년 국민윤리 교사로 교단에 첫발을 디디면서부터 유신을 가르쳐야 했다. 국민윤리 교과서는 한국 윤리사상, 서양 윤리사상이 중반부까지 이어지고, 후반부는 체제 수호를 위한 반공과 유신 관련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윤리교사들은 매 분기별로 각종 연수를 통해 체제 수호와 반공 교육의 앞잡이가 되도록 길들여졌던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지금 단 한 마디의 변명도 할 수 없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교과서에 수록된 대로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고, 그 당시는 누구나 그랬다고 말하는 것은 구차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진실 은폐는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이해를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빵장수가 만든 빵의 무게만큼 버터를 만들었던 농부의 이야기를 위정자들이 그들의 입맛에 맞추어 만든 교과서에 실린 내용을 가르쳐야만 했던 나의 경우와 비교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제자의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그 이야기였다. 그리고 빵장수가 만든 빵의 무게를 기준으로 만든 농부의 버터처럼 내게 배웠던 학생들은 잘못된 규격과 함량에 미달하는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다시금 가슴 한편이 서늘해 왔다. 더구나 나에게는, 내 마음속에는 촘촘한 눈금의 저울까지 있지 않았던가.

  

현재 한국에서는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 정부가 한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찬성측은 기존의 한국사교과서가‘좌편향 서술’됐다며, 반대 측은‘정권의 입맛에 따라 서술될 것’이라며 학계는 물론 정치권, 시민단체들까지 가세해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이제는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한국사교과서를 가지고 학생들을 교육해야 한다고, 전면 폐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윤리, 국어, 한국사 과목은 국책과목이라고 해서 검인정이 아닌 국정교과서를 사용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성숙해감에 따라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이 사회 발전을 위한 더 나은 가치라는 사실에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국책과목까지도 검인정교과서 체제로 전환돼 학교별로 교과서를 선정해 학생들을 교육하도록 했다. 물론 검인정교과서도 국가에서 제시한 기본 틀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준 국정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국정이냐, 검인정이냐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이 한국 사회가 정한‘옳음’의 틀 안에 있는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옳음’의 틀 안에 담긴 것이라면 그 가운데 설사 조그마한 티끌이 담겨 있다 하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점진적으로 수정하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수정된 내용을 가지고 학생들을 교육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은 한국 사회의 성숙도를 비추어주는 거울과도 같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들을 놓고 서로 논의하며 비판할 수 있는 사회, 자기의 생각을 감추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사회는 결코 썩지 않는다.

  

다양한 목소리는 불협화음을 만들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화음을 창조하기도 한다. 획일적인 사고의 강요로 필자처럼 상처를 입는 사람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한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