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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생일잔치
03/09/23  

며칠 전, 초등학교 동창생의 부인이 문자를 보내왔다. 통화하고 싶다고. 4~5년 이상을 병마와 싸우다 완쾌 판정을 받은 지 얼마 안 된 친구이기에 또 무슨 일이 생겼는가 걱정하며 전화를 기다렸다. 저녁 무렵 통화했다.

친구 부인은 남편 생일을 맞이하여 다른 때보다 뜻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며 내게 협조를 요청했다. 내게 주어진 첫 번째 임무는 생일 파티 당일 친구를 픽업해 현장에 가는 것이고, 두 번째 임무는 파티 현장에서 친구에 대해 한 마디 하는 것이었다.

친구가 전혀 눈치 못 채게 자기 생일 파티장으로 데리고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고심했다. 우선 친구에게 만나자고 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부탁을 했다. 내가 어떤 모임에 가야 하는데 자네가 함께 가서 도와줄 일이 있다고 하니 기꺼이 돕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참석하는 모임이 공식적인 행사니까 제일 좋은 옷을 입고 가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친구는 눈치 채지 못했다. 가는 도중에 무슨 일인가 알고 싶어 했으나, 워낙 점잖은 친구인지라 궁금증을 크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식사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니까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된다고 했다. 주차장에 도착해 건물 입구에 들어서려 하니 친구의 두 아들과 부인이 서서 우리를 환영했다. 친구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친구는 실내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더 크게 놀랐다. 친구의 누나 동생들 그리고 조카들, 고교 동창생들 부부, 교회 친구들 부부 등 70여 명이 축하해주기 위해 모였다.

우선 간단하게 예배를 드렸다. 목사님 한 분이 예배를 인도했고, 다른 목사님이 피아노 반주를 했다. 예배를 마칠 무렵 피아노 반주를 하는 목사님의 부인이-이태리 유학파 출신 성악가가- 독창을 할 때는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후에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다며 정식으로 주최 측에 감사를 전했다.

예배를 마치고 친구의 큰아들이 앞에 나와 사회를 봤다. 우리말이 어눌하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어로 진행했다. 특히 친구의 여동생이 오빠에 대해 얘기할 때는 아주 큰 감동이 있었다. '친구가 초등학교 6학년쯤. 추위에 떨고 있는 어린 거지를 길에서 만나 자기 외투를 벗어서 입힌 후에 집에 까지 데리고 와 어머니에게 밥을 해달라고 해서 밥을 먹여 보냈다'는 이야기였는데 평소에 알고 있던 친구의 참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친구는 그런 친구다.

이어서 친구의 고교 동창생이 나와 고교 시절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자기가 학교에 신고 다닐 수 없는 신을 신고 등교했다가 선생님에게 신을 압수당했는데, 친구가 자기가 신고 있던 금강제화 제품의 구두를 벗어 주었다는 것이었다. 정말 친구는 그런 친구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재학시절 나는 친구와 대화를 나눈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키가 큰 친구는 언제나 맨 뒤에 앉아 웃고 있었다. 까부는 다른 학생들을 동생 보듯이 웃으며 보고 있었다. 함께 어울려 논 기억조차 없다. 졸업 후에는 소식조차 모르고 살았다.
20여 년 전, LA에서 만나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형님 같은 친구다. 나는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늘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그러면 문제를 해결해준다. 한 번은 우리집 변기를 갈기 위해 사람을 불렀다. 그런데 변기를 갈다 말고, 자기가 할 수 없다며 가버렸다. 친구에게 이런 걸 고치는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전화했더니 자기가 바꿔주겠다며 달려왔다. 전문가가 할 수 없다고 한 것을 친구는 홈디포에 가서 몇 가지 잔 부속을 사와서 거뜬히 해결했다.

친구의 생일잔치는 생일을 맞은 당사자는 물론 참석자들 모두에게 즐겁고 유쾌한 자리였다. 친구가 병마와 싸울 때 그를 응원하던 사람들이 모여 그의 건강한 모습을 보면서 ‘인간 승리’를 느꼈고, 모두 굳건한 의지와 믿음으로 병마를 쫒아낸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언제나 따뜻한 마음을 갖고 사는 친구의 아름다운 인생 여정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 즉, 남을 넓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를 따르는 사람이 있어 외롭지 않다는 옛 성현의 말씀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며칠 후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퇴근길, 1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데 천장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친구에게 전화했다. 지붕일 하는 사람 아냐고 물으니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전화를 걸었다. 바로 다음날 사람이 와서 해결해 주었다.

형님 같은 친구가 곁에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 그가 늘 건강하길 기원한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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