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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04/23/18  

이 글이 세상에 나왔을 때, 필자는 설산을 걷고 있을 것이다.

 

 

오래 전부터 꿈꾸어 왔던 일이다. 대학 시절 히말라야 원정을 다녀온 친구를 부러워했다. 그 친구는 같은 대학에 다녔으며 한 동네에 살았다. 졸업 후 들은 소식에 의하면 몇 차례 더 히말라야에 다녀온 친구는 동상으로 발가락을 잘라내야 했다. 그렇더라도 그 친구를 생각할 때면 늘 부러움이 앞선다. 히말라야는 언제나 꿈꾸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는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스트어로 눈(雪)을 뜻하는 히마(Hima)와 거처(居處)를 뜻하는 알라야(Alaya)의 합성어로‘눈의 거처’, 즉 눈이 사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히말라야 산맥에는 8,000미터가 넘는 고봉이 14개나 있다. 14개 봉우리의 베이스캠프가 대부분 5,000미터가 넘는 곳에 위치해 있으나 안나푸르나만 4,130미터에 위치해 있기에 일반인들의 접근이 용이하다. 줄여서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라고 부르며 이번 트레킹의 목적지이다.

 

 

안나푸르나는‘풍요의 여신’이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안나푸르나에는 농부들이 농사를 짓는 논과 밭이 있으며 인류가 오른 최초의 8,000미터대 산도 안나푸르나이다. 안나푸르나에 맨 처음 길을 낸 구릉족이 올해로 2,000번이 넘는 새해를 맞이했다고 하니 이 길의 나이도 2,000살을 넘긴 셈이다. 그 긴 세월 무수한 발자국에 의해 다져진 길에 발 디딜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랜다.

 

 

남가주에는 오르내릴 만한 산이 있을 거라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먹고 살기 바쁜 탓도 있었지만 LA는 사막 위에 건설된 도시라는 얘기만 들어왔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15~6년 전 친구들과 산을 찾기 시작하면서 이곳에도 아름다운 산이 즐비하고 초여름까지 눈 덮여 있는 높은 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10번 프리웨이 산타아니타 길에서 내려서 구불구불길 따라 올라가면 수많은 트레일이 나온다.  길을 친구들과 올라 다녔다. 2년쯤 다니다가 마운틴 볼디로 주무대를 옮겼다. 아이스하우스 캐년 트레일을 주로 다니다가 스키헛 트레일이나 데빌스 백본 트레일로 가끔 정상에 오르기도 하면서 주말이면 거의 빼놓지 않고 다녔다. 5년 전부터는 산골고니오 마운틴으로 옮겨 비비안클릭이나 사우즈 퍼크 트레일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미국 본토에서 가장 높다는 마운틴 위트니(4,421미터) 도전에 나선 적도 있다. 산 아래에서 하루 자고 이튿날 정상에 올랐다가 돌아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산행전날 잠을 이루지 못 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런 탓이었는지 산행 도중 고산병 증세로 머리가 너무 아파 정상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중간에 하산해야만 했다. 일반적으로 3,000미터가 넘는 산에서는 고산병 증세가나타난다고 한다.

 

 

이번 히말라야 산행을 앞두고도 제일 염려되는 것이 바로 고산병이다. 물론 고산병에 대비해 약품 등을 준비하긴 했지만 마운틴 위트니에서의 경험이 긴장과 걱정의 끈을 놓지 못 하게 한다.

 

 

산으로 향하는 내 마음을 본능이라고 생각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의식적으로 찾게 되는 본능.  한 번도 여기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적이 없다. 그리고 산으로 향하는 마음은 결국 히말라야로 향한다고 믿었다. 그런 탓인지 내가 히말라야에 가기로 했다고 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젠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언제 떠나는가 물었다.

 

 

지난 연말 심한 독감에 걸려 고생을 했다. 히말라야로 떠날 날이 가까워와도 말끔하게 낫질 않아, 떠나기 이틀 전에 선배의 병원을 찾았다. 히말라야에 간다고 하자 선배는“돈 생기는 일도 아니고 시간 빼앗기고, 몸도 고단하고, 오고 가느라고 여비도 만만치 들지 않을 텐데 왜 그런 짓을 하냐?”며“지금 이라도 그만 두라.”고 했다. 선배의 말을 들으면서도 마음은 히말라야만을 향하고 있었다. 물론“지금 몸 상태로는 산에 오르기 무리야.”라고 말했더라도 히말라야를 포기하기는 힘들
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적어도 인간에게는 가치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나의 히말라야행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가치 가운데 하나를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걷던 그 길을 걸으며 깨닫게 되기를 기대한다. 설령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낼 만한 그럴싸한 가치를 찾지 못 한다 하더라도, 마음속에 묻고 키워 왔던 젊은 날의 꿈을 이룬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히말라야에 올라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과연 나는 무엇 때문에 히말라야를 꿈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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