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총회 후기
03/27/23  

지난주 이런 기사가 올라왔었다. “700만 원씩은 걸치고 간다”… 엄마들의 데뷔 날 ‘학부모 총회’내용인즉 이러하다. 초등학교 1학년생 딸을 둔 30대 A씨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공개수업 겸 학부모총회에 참석했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엄마들 대부분 명품 가방 하나씩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샤넬백부터 에르메스 켈리백, 버킨백까지 10명 중 8명은 몸에 최소 700만 원씩 두른 것 같았다나?

기사를 대충 읽고는 일단 좀 코웃음이 나왔음. 뭐 너무 뜬금없달까? 어디 뭐 통계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한 학부모가 "아니 엄마들이 열에 여덟은 명품백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수백만 원씩 휘두르고 학교에 왔지 뭐야~"라고 저녁 식사 중에 남편에게 했을 법한 이야기를 갖고 기사를 쓰다니 말이다. 하지만 이 기사는 맘카페와 SNS를 타고 아줌마들 사이에서 꽤나 이슈가 되었고 나도 아줌마여서인지 어쩌다 이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최소 700만원?! 어디냐? 누구냐? 나는 모르는 세계구나!

나도 매년 3월 학년초에 열리는 공개 수업 겸 학부모총회에 꼭 참석한다. 자녀가 고학년이 되면 불참하는 학부모들도 꽤 있다고 하는데 내 아이들이 하루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교실을 방문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총회 날짜가 잡히면 나 역시 무엇을 입을까 잠시 고민하긴 한다. 너무 어둡고 무거워 보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기온이 갑자기 초여름 날씨처럼 따뜻해졌으니 너무 덥게 입어서는 안 된다. 세 자녀들의 학급에 모두 방문해야 하니 뛰어다닐 수 있는 편안한 복장이어야 한다. 나의 고려 대상은 그냥 여기까지이다. 명품 가방을 든 고상한 학부모총회룩 따위는 없다. 아무리 한껏 멋을 낸다 한들 700만 원 채우는 것도 불가능하겠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애당초 그런 애를 써볼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 심지어 나는 이날 하루 종일 진짜 땀내 나게 뛰어다녀야만 했다. 자, 고상하지 못한 다자녀 엄마의 학부모총회 후기를 한번 이야기해 볼까나?

나는 현재 중학교 한 명, 초등학교에 두 명의 아이들이 재학 중인데 하필이면 중학교와 초등학교의 총회가 같은 날, 같은 시간인 것이다. 인근 다른 중학교들은 모두 한 주 먼저 총회를 끝낸 상황인데 하필이면 우리 딸이 다니는 여중은 완전 시간이 일치했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 전부터 고심에 빠졌다. 아이들의 의중을 살짝 떠보니 다들 엄마가 와줬으면 하는 눈치다. 엄마가 오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하니 그에 비하면 다행이긴 한데 운동화끈을 동여매고 뛰어야 하겠구나 싶었다.

일단 시간 맞춰 초등학교에 도착. 바로 막내 3학년 교실에 가서 얼굴 도장을 찍고 아들이 발표 두 번 하는 것까지 보고 초6학년 교실로 이동. 내가 교실로 들어가 비집고 서자마자 우리 아들의 발표 차례. "우리 가족" 자작시를 발표했는데 생각보다 잘 써서 혼자 감동. 그리고 다시 3학년 교실에 잠깐 들렸다가 공개 수업 마치고 바로 딸이 다니는 중학교로 이동. 시간이 1시 45분쯤 되었고 딸의 공개 수업은 2시 5분에 끝나기 때문에 빠르게 이동해야 한다. 뛰다 걷다 하면서 10분 만인 55분에 학교 3층 1학년 6반 교실에 도착했다. 교실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우리 딸이 안 보인다. 아뿔싸! 특별활동 시간이라 교실 대신 컴퓨터실로 이동해서 수업을 하고 있단다. 다시 밑으로 내려와서 별관으로 이동해서 3층 컴퓨터실로 내달렸다. 그리고 결국 수업하는 모습 겨우 5분 봄. 심지어 자기들끼리 컴퓨터 하는 거라 뭐 딱히 볼 것도 없었다는...

그리고 다시 본관 지하에 있는 총회에 가서 교장, 교감 선생님 말씀 좀 듣고 다시 3층 1-6반 부모 상담에 참여했다. 우리 딸 반은 총 15명의 학생 중 나 포함 3명의 학부모가 참석했는데 큰 소득은 없었고 이 모임의 실질적은 목적은 따로 있었다. 매년 학부모 급식 모니터링과 시험감독에 참여자가 필요했던 것! 신청해야 할 횟수가 총 6개였는데 학부모가 3명밖에 없고 한 분은 아버지신데 1회 이상은 하시기 곤란하다고 하여 졸지에 내가 4회나 신청을 해야 했다. 담임 선생님이 대 놓고 신청서를 들이미시는데 못 본 척 뒤돌아 오지 못했다는... 심지어 우리 딸은 학급 임원도 아닌데… 

암튼 부모 상담까지 마치고 교문 앞에서 딸을 만나 한 정거장 거리에 교정 치과 진료를 가기로 했는데 딸이 교정 장치 집에 두고 왔대서 다시 집에 갔다가 치과에 가야 했다. 진료 마치고 딸은 수학 학원에 가고 나는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친정 엄마를 만나 이른 저녁 식사를 하러 가기로 했는데 혹시나 싶어서 (자주 약속 시간, 장소를 착각하신 적이 있음) 약속 시간 5분 전에 엄마한테 전화를 하니 TV를 보다가 시간을 놓쳐 지금 막 집에서 나오셨단다. 나는 정류장에도 15분이나 미리 도착했는데 그 이후로도 20분을 더 기다려야 했음. 그래도 무쇠판에 나오는 1급 한돈 삼겹살을 배 터지게 먹고 평화가 찾아오려던 찰나 밥 잘 먹고 물로 입가심을 하시던 엄마의 찬물 끼얹는 한마디 "아이고~ 물이 제일 맛있다." 아이들 저녁을 차려줘야 했기에 서둘러 집으로 향하던 만원 버스, 정신 없어서 그만 한 정거장 먼저 내려버려서 또 정신없이 뛰어서 집으로 왔다.평소라면 남편도 귀가했을 시간인데 하필 이날은 남편도 동창 모임에 가서 내가 밥을 챙겨줘야만 했다.

휴우~~~ 참으로 길고 고단한 하루였다. 이런 내게 700만 원 워치 명품 치장이 뭐가 필요하리오? 설마 내 학부모총회만 이런 건가? 우리 학교 엄마들도 10명 중 8명은 명품 풀장착하고 왔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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