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사태, 남의 일이 아니다
04/03/23  

3월 27일, 독일 거대 노동조합들의 파업으로 유럽 대륙은 물론 세계 경제가 마비됐다. 이날 총파업으로 독일의 거의 모든 공항과 항만, 철도, 일부 지역 지하철 노선이 멈춰서면서 극심한 혼란을 빚었다. 항공편 수천 편이 취소됐고 철도망도 마비됐다. 항만 노동자들이 합류하면서 철도망과 항구 화물 운송도 타격을 입었다. 16개 주(州) 가운데 7개 주는 버스, 트램, 지하철 등 지역 대중교통 운행이 차질을 빚었다.

대부분의 독일 국민들은 파업을 폭넓게 지지하고 있다. 독일의 공공서비스노조 베르디(Ver.di)와 철도·교통노조(EVG)는 두 자리 수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다른 일부 노조들은 큰 폭의 임금 인상에 성공했다. 400만 명을 대표하는 독일 최대 노조인 IG 메탈은 지난해 11월 8.5% 임금 인상률을 합의했으며, 3월 초,우편 노동자들의 월 평균 임금은 11.5% 인상됐다. 따라서 27일 파업 이후 노사정 대표들이 모여 재협상에 들어갔다고 하니 좋은 결과를 도출해낼 것으로 예상한다.

한편 이스라엘에서도 3월 27일 정부의 사법개혁 추진에 항의하는 파업으로 이스라엘의 주요 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이 이륙하지 못했다. 항공편 변경 등으로 수만 명이 불편을 겪었으며, 이스라엘 경제를 대거 마비시켰다. 그러나 대통령까지 나서서 시민들의 편에 서서 사법개혁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시민들의 편에 들자 수상도 사법개혁 시기를 늦추기로 해 시민들의 소요는 다소 누그러졌다.

독일과 이스라엘은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상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노조들의 파업으로 도시들은 쓰레기로 넘쳐나고 철도는 멈췄고, 학교는 문을 닫았다. 파리를 비롯해 몇몇 도시에서는 두 달 가까이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시위대를 제압하기 위해 경찰은 물대포를 쏴대고, 최루탄을 발사하고 있다. 이에 맞서고 있는 시민들은 폭죽을 터트리며 저항하고 도시 곳곳에 불을 지르고 있다. 나라 전체가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집권 2기를 맞이한 마크롱 정부의 연금개혁을 둘러싸고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1789년 시민 혁명을 통해 왕조를 무너트리고 근대공화정을 확립했던 프랑스가 2023년 또 다른 시민혁명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노조를 비롯한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개혁에 무조건 반대를 외치며 투쟁하고 있다. 3월 23일 노동단체들의 연대 총파업과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로 투쟁은 절정에 달했고 프랑스는 마비 상태이다.

올해 초 발표한 마크롱 연금개혁안의 핵심은 정년 연장이다. 현재 62세인 정년을 매년 3개월씩 늘려 2030년까지 64세로 연장하고, 연금 100% 수령기준을 근로기간 42년에서 2027년까지 43년으로 늘린다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더 오래 일하게 근로 기간을 늘린 것이다. 그러나 근로자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선다. 마크롱과 일반시민들의 정년과 연금에 대한 커다란 시각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년을 2년 연장하고, 연금 수령 근로기간을 1년 늦추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젊은 날 힘들게 일하면서 납세의무를 다했고, 노년에 남은 삶을 연금을 타면서 편안하게 살려는 꿈을 빼앗으려는 것이 문제다. 즉 자신이 납부했던 세금을 연금 형식으로 받아 즐기려는 그 삶에 대한 계획을 늦춰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상 세 나라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가 과거와 같이 자유, 평등, 박애 등을 외치는 이념 지향적이지 않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본 요건에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투쟁이라는 점에서 보다 더 절박하게 느껴진다.

정부가 국민들의 세금을 어떻게 제대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그 세금을 여러 가지 허울 좋은 명목을 앞세워 허투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찬찬히 살펴봐야 할 시점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잘못된 결정을 할 때마다 국민들의 혈세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지 못 할 수도 있다. 유럽의 상황을 남의 나라의 일이라고 외면해서는 절대 안 된다. 국민 삶의 질 제고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 어느 나라도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노년기 삶의 문제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전 세계 모든 국가들에게 닥쳐올 심각한 문제임을 주지하고 위정자들은 위정자들대로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국민 개개인도 자신의 노후대책 마련에 만전을 기해 더 풍요롭고 편안한 노년을 기약해야 할 것이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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