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04/23/18  

히말라야의 밤은 추웠다. 펄펄 끓는 물을 담은 핫팩 한 개는 침낭 발치에 두고, 다른 하나는 껴안고 잤다. 그래도 새벽녘에 밀려오는 추위를 막을 순 없었다. 더구나 고산병 예방을 위해 물을 많이 마신 탓에 밤마다 자다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와야 했다. 롯지의 화장실은 대부분 숙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잠에서 깨 지친 몸을 일으켜야 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덕분에 생각하지 못했던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화장실 오가는 길에 보았던 하늘은 자다 깨어나야 하는 괴로움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보름달에서 매일 밤 점점 작아지고 있던 달과 보석보다 더 화려하게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로 채워진 밤하늘은 거대한 캔버스였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방문객을 위한 히말라야 최고의 선물이었다.

 


히말라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상하이 공항과 쿤밍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며 여러 가지 일이 벌어졌지만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아 기록으로 옮기는 일은 삼가겠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35시간 만에 카트만두에 도착했을 때 미국에서 부친 짐은 도착하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셀폰은 잃어버린 상태였다. 오직 비행기를 탈 때 가지고 탄 백팩 속에 들어있는 옷과 입고 있는 것을 포함해 얇은 재킷 세 벌, 바지 두 벌, 양말 두 켤레, 팬티 한 장이 내가 가진 모두였다.

 

 

그대로 돌아갈까, 혹은 카트만두에서 며칠 지내다가 돌아갈까 생각이 많았다. 숙고 끝에 예정대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오르기로 했다. 트레킹 시작 전에 꼭 필요한 장비 몇 가지를 포카라에서 구입했다. 이때 팬티를 몇 벌 구입해야 했으나 서두르다 깜빡하고 말았다. 입고 있던 한 벌로 열흘을 지내야 했다.

 

 

어디 그 뿐이랴. 산행하는 동안 세면도 면도도 하지않고 머리도 감지 않았다. 더운 물이 나온다는 롯지에서도 세수를 하지 않았다. 이만 닦았다. 하루 종일 땀 흘리고, 제대로 씻지 않아도 버틸 수 있었지만, 잠자리에서 코가 막혀 입으로 숨을 쉬는 관계로 입 안의 텁텁함은 참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추운 날씨에 씻는 일 자체가 귀찮고 부담스러웠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걷고 또 걸었다. 늘 뒤에서 쳐져서 걸었고 당연히 목적지엔 제일 나중에 도착했다. 일행들은 우려의 눈으로 쳐다보았고 측은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등짐을 메고 걷는 것이 힘들어 보였는지 가끔 가이드들이 짐을 대신 져 주기도 했다. 무릎이 문제였다.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마다 고통을 견뎌야 했다. 그때마다 포터들을 생각했다. 변변한 신을 신지도 않고 심지어 슬리퍼를 신은 포터도 있었다-무거운 짐을 진채 마른 길, 젖은 길, 눈길을 가리지 않고 뛰고 달리는 그들을 보며 참고 걸었다.

 

 

ABC(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하얗게 눈 덮인 안나푸르나는 아래서 보던 그 산이 아니었다. 우리 일행이 도착한 ABC에는 이미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안나푸르나는 달빛에 반사되어 더욱 웅장하면서도 신비스런 모습으로 변해갔다. 기어코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눈물은 콧물을 동반했고 주체할 수 없이 가는 흐느낌으로 이어졌다. 고통을 견디고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안나푸르나의 장엄함 때문이었는지 알지 못하고 또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시간이었다. 거칠게 부는 바람과 간간이 날리는 눈발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스쳐갔으나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하산 길은 몹시 고통스러웠다. 무릎의 통증에 결국 신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러나 어차피 가야 할 길, 이를 악물고 걸었다. 하산 길에 만난 노천온천에서 잠시 쉬며 그나마 피로를 풀 수 있었다.

 

 

온천에서 숙소까지도 쉬운 길은 아니었다. 한 걸음, 한 걸음‘나는 행복합니다’를 반복해 뇌며 걸었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걸었다. 평탄하지 않았고 뜻하지 않은 일을 많이 만났으나‘신의 차원’이라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결국 올랐다는 생각이 고통을 참을 수 있게 했다.

 

 

무엇을 위해 이곳을 찾았을까? 눈길을 오르고 또 내려오는 내내 생각했다. 말없이 같이 걸었던 일행들 모두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다시 32시간 걸려 미국으로 돌아온 지금까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

 

 

글을 마무리하려는 지금‘히말라야를 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떠올라 뒷골이 서늘해진다. 이 말이 물리적으로 히말라야를 여러 번 방문한다는 뜻이든, 일상생활에서 히말라야를 자주 떠올린다는 뜻이든 별 상관이 없다. 나는 벌써 그 거대했던 밤의 캔버스를, 밤이 깊을수록 달빛에 푸르게 빛나던 안나푸르나를, 눈물범벅의 얼굴을 스쳐가던 바람을, 지긋지긋했던 밤의 추위를,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아픔들을 그리워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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