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訃告)
04/23/18  

히말라야에 다녀오자마자 두 사람의 부고를 받았다.

 

 

깜짝 놀랐다. 그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였기 때문이다. 또 한편, 잠 못 이루던 히말라야의 밤마다 나를 찍어 누르던 알 수 없었던 그 공포의 정체가 죽음이었을 거라고, 죽음이 히뜩히뜩 희미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려고 괴롭혔던 것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부고를 받았으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은 매주 수요일 함께 점심을 먹는 모임의 멤버로 그를 안 지는 4년 정도 되었다. 고인은 생전에 모임의 회계, 재정을 담당했는데 다른 멤버들이 그를 융통성 없고 까칠한 사람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나역시 언제나 무표정한 그를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2년 전 수술을 받았고 얼마 전 재수술을 받았다. 재수술 후에도 예전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모임에 나와 예의 까칠함을 보여 주어 이렇게 갑자기 유명을 달리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가 내게 남긴 마지막 모습은 짜증 섞인 목소리와 찡그린 얼굴이다.
지난해 말 모임에서 식탁 앞에 둘러 앉아 있는 모든 멤버들의 사진을 찍었다. 그때 그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 얼굴은 나오지 않잖아.”맨 앞에서 등을 돌리고 있었던 그는 내가 셔터를 누른 후에 돌아앉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다시 찍었다. 사진 속에서 그는 화가 난 표정으로 정면을 주시하고 있다.

 

 

가만히 생각하니 단 한 번도 그가 먼저 나에게 인사한 적이 없다. 그리고 웃는 모습을 보여 준 적도 없다. 언제나 퉁명스럽게 대했고 사무적이었다. 하지만 부음을 접하고 그와 다정하게 지내지 못 했던 나 자신을 책망했다‘. 내가 먼저 살갑게 다가가 가까운 사이로 지냈어야 하는데’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또 다른 사람은 한국에서 같은 학교에 근무했던 분이다. 함께 한 시간이 7년에 이른다.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우리는 막 문을 연 학교에서 의기투합해서 많은 일을 벌였다. 우리는 축제, 생활관 교육, 각종 현장체험학습, 간부수련회, 수학여행 등의 학교 행사들을 기획하고 멋지게 치러 냈다. 1993년 미국으로 이주하던 해에 그는 공립학교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던 학교를 떠났고 지난해에 정년퇴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났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그의 아들에 의하면 고인은 말기 암을 앓고 있었으나 가족을 포함해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고 혼자 치료하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무엇이 가족들에게조차 자신의 병을 알리지 않고 오직 혼자서만 감당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세상을 떠날 때까지 외롭게 투병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 억색해진다.

 

 

한국에 갈 때마다 한 번 만나야 하는데, 만나야 하는데 벼르기만 하고 연락을 하지 못했다. 또 다른 사람들도 몇 번인가 연락을 취했지만 만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로 바쁘게 살다 보니 마음은 있지만 쉽게 만나지는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 아무리 마음이 있어도 다시는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히말라야에서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도, 두통으로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오고 호흡 곤란 증세를 느끼면서도 하루 종일 걸을 수 있었던 것은 ABC에 도달해야겠다는 나의 의지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보다 큰 힘이 되었던 것은 동료들의 격려와 위로였다. 그들의 따뜻한 보살핌이 없이 나의 의지만으로는 결코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일생 동안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리워하고, 위로하고 위로 받으며 살아간다. 그것이 살아가는 힘이다. 하지만 헤어짐 없는 만남은 없다. 그리고 만남을 기약할 수 없는 헤어짐 앞에서는 늘 형언할 수 없는 서운함과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다.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고 언제 어느 때 누가 먼저 떠나 갈 지 아무도 모른다. 사는 동안 보고 싶은 사람은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서로 서먹서먹한 관계의 사람이라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겠다. 기왕이면 여러 관계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 고마운 사람, 즐겁고 유쾌한 사람으로 기억되도록 노력해야겠다.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

 

 

삼가 고인이 된 두 사람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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