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04/17/23  

내가 다니는 병원 간호사들은 나를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물론 나만 그렇게 부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 병원을 찾는 남자 환자들은 아버님, 여자 환자들은 어머님이라고 부른다. 환자들은 모두 그들의 아버지이고 어머니가 되는 셈이다. 모든 환자들을 극진히 자기 부모님처럼 모시려는 마음의 표현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그냥 이름을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 ㅇㅇㅇ님, 혹은 ㅇㅇㅇ 씨라고 부르면 더 편할 것 같다.

 

노인은 중년 다음에 해당되는 일련의 단계로 인생의 최종 단계다. ‘늙은이’에 비해 ‘노인’은 완곡한 표현이다. 요즘은 더 완곡함이 느껴지는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늙은이든 노인 혹은 어르신이든 말하는 사람에게 객관화되어 있음에 비해 ‘아버님’이나 ‘어머님’은 매우 주관적이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간에 가족적 유대감에 버금가는 친밀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겠으나 듣는 아버지 입장에서는 영 마음이 편치 않다.

 

사회 전반에 걸쳐 노인이라는 말 대신에 ‘어르신’, '시니어', '실버', '연장자' 같은 말로 완곡하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 속되게 표현할 때는 '노인네', '노친네', '노땅', 틀딱 등의 용어를 쓰기도 한다. 이런 표현은 듣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쾌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비하명칭들처럼 격의 없이 친한 사이에서 쓰거나 같은 노인끼리 쓰면 친근감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old man’ 대신 ‘senior citizen’을 즐겨 쓰고, 일본에서는 老人 대신에 한국의 '어르신'에 해당하는 ‘年寄としより’라는 단어를 쓴다. 영국에서는 노인에게 ‘old’라고 하면 무례하다고 여겨 elderly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무엇이라고 부르는가가 그리 중요할까마는 듣는 입장에서는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서글퍼질 수도 있겠다.

 

그런데 노인을 어떻게 부르느냐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노인 연령을 몇 살부터로 규정하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끼는 노인이 많아지고 있으며, 저출산 고령화로 경제활동 인구를 늘려야 하는 현실에 직면한 상황에서 노인에 대한 재정의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사회적 문제임에 틀림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근래 들어 미국,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노인에 대한 재정의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나이가 듦에 따라 미세한 운동능력은 줄어들겠지만, 판단력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심리학적 연구 결과도 있다. 의술이 발달하고 국민들 대다수가 의료 혜택을 손쉽게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생존연령이 늘어나게 되어 70~80대에 들어서도 건강을 유지하면서 일상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대부분의 시니어들이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는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건강 상태로만 따지면 40년 전과 지금의 노인 연령이 같을 수 없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금의 84세는 1981년 당시 67세 정도에 해당된다. 따라서 현재 60, 70대는 충분히 일할 만한 나이이다. 실제로 주변에 보면 왕성하게 일하고 있는 노인들도 많다. 그런 만큼 정년을 연장해 오래 일하도록 해야 한다.

 

노인 연령이 상향되면 노인을 대상으로 한 복지 수혜 연령도 늦춰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 대다수가 노인이 된다면 결국 우리 사회의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인 연령을 상향하되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 복지 혜택을 받고 있던 노인 빈곤층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일시에 상향해서는 안 된다. 점진적으로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

 

사실 노인을 부르는 말이나 노인 연령 재규정은 노인 복지 선상에 함께 놓인 문제들이다. 완곡한 말 한 마디가 노인들에게 정신적인 만족감을 준다면, 경제적 복지 혜택은 노년기 삶에 궁극적인 풍요와 만족을 가져다준다. 하나가 사회적 배려라고 한다면 다른 하나는 제도적 배려라고 할 수 있다. 노인들에게 이 둘 가운데 어느 하나도 부족함이 없어야 하는 것은 그들이 가족부양, 사회 발전 등 젊은 시절 그들의 어깨에 무겁게 내려앉았던 책임들을 치열한 삶을 통해 성공적으로 수행해 현재를 만들어낸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배려와 존경, 복지 혜택을 받을 충분한 자격을 갖춘 까닭이다.

 

오늘 아침 어떤 모임에서 한 분이 향년 84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일면식도 없는 분이었으나 좀 더 살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운 마음에 ‘조금 일찍 가셨다’고 하니 자리에 있던 한 목사님이 ‘80세가 되기 전에 같은 연령의 사람들 중에 50%가 세상을 떠나니 그 절반 보다는 더 오래 산 것’이라며 충분히 살지 않았냐고 했다.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과히 틀린 말은 아니기에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으나 입을 꼭 다물고 진심으로 고인의 영면을 기원했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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