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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with enthusiasm!
04/23/18  

만나는 사람마다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듣기 불편한 질문이다. 고산지대에서 열흘간 걷다 보니 잘 먹었음에도 힘이 많이 들었나 보다. 얼굴도 수척해지고 살도 많이 빠졌고 피로가 풀리지 않고 있다. 심지어 그새 폭삭 늙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동안(童顔)이라고 인사를 건네고 오랜만에 보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젊다고 말하는 것이 덕담이 되는 세상에서 늙었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 사탕발림 같은 말에 흐뭇해하고 젊어 보이려고 안간 힘을 쓰면서 살 것인가?

  

한국에서 연극배우인 25세의 젊은이가 하루 동안 80대의 노인으로 생활했다. 머리를 희게 물들이고 얼굴은 주름과 검버섯 등으로 완벽하게 분장하고 다리에는 모래주머니를 찼다. 노인처럼 천천히 걷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이 그를 진짜 노인으로 대할 정도로 완벽한 분장이었다. 연극배우였으니 연기도 완벽했을 것이다.

  

80대 노인이 된 그가 느낀 사회는 차디찼다. 25세의 청년이 느꼈던 세상과 너무 달랐다.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와 말을 붙이려 하지 않았고 길을 물으려 다가가면 외면하기 일쑤였다. 대화조차 하려 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냉대에 가까웠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뀐 후에 천천히 걸어보니 빨간불로 바뀌기 전에 건너기 어려웠다고도 했다. 평소에는 쉽게 건너다녔는데. 노인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고역이라는 얘기다.

  

‘젊음’이 아름답고 빛난다는 공식이 성립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늙음’은 추하다는 의미다. 노년이 소외되는 사회에서는 늙는 것을 무서워할 수밖에 없다. 이걸 극복하려고 사람들은 젊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며 산다. 노인의 상징인 흰머리는 검게 물들이고 주름살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팽팽한 피부를 위한 각종 시술을 마다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젊어지려고 발버둥 치면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젠가 고등학교 동창생 차를 타게 되었다. 친구의 차에는 요즈음 젊은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랩이 들어있는 노래였다. 듣고만 있어도 숨이 찬노래를 친구는 흥얼흥얼 따라 불렀다. 젊은이들과 호흡을 같이 하려면 노래도 함께 해야 한다면서. 젊은이들의 노래를 따라 불러야만 그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젊은이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지 못하면 그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을 지키며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사회, 나이드는 과정을 존엄하게 바라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길어지는 노년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릇된 노인관(觀)이 지배하는-늙음을 추한 것으로 규정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나 노년을 불행하게 보낼 확률이 높다. 노인들이 가정과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소리를 내야 한다. 늙었다고 움츠리고 방안에 틀어 박혀 있지 말고 사회 각 분야에서 벌어지는 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젊음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상태다. 세월은 우리의 살갗을 주름살지우지만 정열을 포기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늙게 한다.’30여 년 전에 자주 인용하던 윌리암 울먼의 시구다. 이 시를 나이 든 사람이 읊으면 어쩐지 처량하게 들린다. 발버둥치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래서 더 이상 들먹이고 싶지 않으나 옳은 말임에는 틀림없다. 만일 삶에 대한 열정을 버린다면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다른 것들은 다 포기하더라고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꼭 지키고 살아야 한다.

  

나이 든 삶에서도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얼굴의 잡티나 주름살 제거를 위해 많은 돈을 쓰고, 젊어 보이려고 발버둥치기 보다 나이에 어울리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제 나이처럼 안 보이시네요.”라는 말을 인사로 나누지 말자. 서로의 나이를 인정하고 살아온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친구들이 히말라야 원정 무사 귀환을 축하한다며 만나자고 했다. 친구들도 놀라는 눈치였다. 얼굴이 많이 상했다며 걱정스러워 했다. 빨리 회복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일 아침 수영장에 오지 않겠는가 물었다. 7시에 만나기로 했다. 누가 빨리 가나 대결을 하자고 했다. 수영, 자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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