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島山)을 찾아서
04/24/23  

한국에서 친구가 왔다. 중·고등학교 동창생인 친구는 성공회 신부로 은퇴하고 지금은 강원도 동해시의 한마음병원에서 원목으로 봉직하고 있다. 친구가 시카고의 성공회 한인교회의 초빙을 받아 가는 길에 LA에 들려 일주일 정도 머무르다 간다고 두어 달 전에 알려왔다. ‘LA에 머무르는 동안 가고 싶은 곳이 있는가?’ 물으니 도산 안창호 선생이 살던 곳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LA를 방문했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 누구도 찾지 않았던 곳이라 의아했으나-부끄럽지만 필자도 가본 적이 없다- 어려서부터 민족관, 국가관이 확고했던 그를 보아 왔던지라 그 다운 생각이라고 여겼다.

우리는 중학교 1학년,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친구는 말을 더듬었다. 그런 친구와 필자가 학급 대표로 교내 웅변대회에 나갔었다. 그런데 필자는 입상조차 못했는데 친구는 일등을 했다. 어떻게 말을 더듬지 않고 웅변을 했는가? 날고 기는 친구들을 젖히고 일등까지 할 수 있었는가? 궁금했었다.
성인이 되어서야 그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친구는 말더듬을 고치기 위해 웅변학원에 다녔다. 그래서 웅변할 때는 안 더듬게 되었다고 했다. 평소 말하는 것과 웅변할 때 말하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신학교에 가서 신부가 되었다.

LA 공항에서 친구를 픽업해서 오는 길에 산페드로 시에 있는 우정의 종각으로 갔다. 예상대로 친구는 좋아했다. 이 종은 1979년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한미 두 나라의 우의와 신의를 두텁게 하는 뜻에서 미합중국 국민에게 대한민국 국민이 기증한 우정의 선물이라는데 큰 가치가 있다. 태평양이 바라다 보이는 종각 앞에서 친구는 감격에 겨워 뜨거운 애국심을 담아 기도했다.

다음날 도산 안창호 선생의 흔적을 찾아 떠났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인친목회와 공립협회를 조직한 도산은 1904년 남가주 리버사이드로 이주해 오렌지 농장에서 일했다. 도산은 일자리가 많은 오렌지농장으로 한인들을 불러 모았고 마을을 만들었다. 이 마을을 '파차파 캠프'라고 불렀다. 도산은 “오렌지 하나를 따더라도 정성껏 따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며 솔선수범했다. 일설에 의하면 파차파 캠프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수가 최대 3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미국 내 한인 타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혹자는 좀 과장하여 ‘도산 공화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금은 도시 개발로 파차파 캠프가 있었던 오렌지 농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파차파 캠프가 있었던 곳임을 알려주는 쇠로 된 표시판이 외롭게 지키고 있을 뿐이다. 표시판을 한동안 바라다보고 있던 친구는 감격스러움을 감추지 않고 힘차게 기도했다.

파차파 캠프 표시판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로스앤젤레스 동쪽 54마일 지점-에 리버사이드시 시청 앞 광장에 있는 안창호 선생의 동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양복을 잘 차려 입은 도산은 뒷짐을 지고 있는데 손에는 책을 들고 있었다. 그 바쁜 와중에도 책을 가까이 했던 도산의 모습을 옮겨 놓은 듯하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 간디를 비롯해 멕시코의 지도자 산체스, 마틴 루터 킹 목사 등의 동상들도 눈에 띄었다.

2019년 3월 리버사이드에서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한인 예술인들이 극본, 음악, 영상, 안무, 등 모든 것을 창작해서 뮤지컬 '도산'을 무대에 올렸다. 19살의 청년 안창호가 1898년 평양에서 연설하는 것을 시작으로, 정혼자 혜련과 만나 미국 유학길에 오르고, 리버사이드 오렌지 농장에서 움튼 대한 독립의 희망과 대한인국민회와 공립협회 등에서 독립 운동의 활동상을 비롯해 미국에 남겨진 가족들과 생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사연 등, 파란 만장한 도산의 일생을 담았다.

뮤지컬 '도산'은 2019년 8월 LA 도심의 윌셔 이벨 극장에서 객석을 가득 채운 가운데 새롭게 선보였다. 이후 코로나 팬데믹으로 잠시 공연이 중단되었다가 2022년 8월, 3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를 맡기 전까지 미주 한인사회를 이끈 도산 안창호의 흔적은 미주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의 우체국을 ‘도산 안창호 우체국’으로 명명했고 도산의 이름을 붙인 입체교차로와 광장도 있다.

2018년 8월, 캘리포니아주 하원은 매년 11월 9일을 ‘도산 안창호의 날(Dosan Ahn Chang Ho Day)’로 지정해 기념하자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도산이 남긴 정신적, 물질적 유산이 캘리포니아주 정부가 보존, 계승하고 널리 알릴 가치 있는 소중한 자산임을 확인한 것이다.
도산은 한국 근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민족의 스승이자 사상가이며 독립운동 지도자였다. 무실역행(務實力行) 충의용감(忠義勇敢)으로 대변되는 그의 사상과 행적은 한국과 미국을 넘어 전인류의 정신적 자산이자 실천 가치임이 분명하다.

안창호 선생의 동상 주위를 돌면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친구를 보면서 필자도 그가 이번 미국 방문에서 큰 보람을 얻길 기원했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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