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기억
04/23/18  

십여 년 만에 만난 사람들과 얘기 나누던 중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난 후배가 화제 속에 등장했다. 그들이 떠난 후에 후배에 대한 기록이 있을까 해서 여기저기 찾아보았다. 그와 함께 산에 올랐던 기록과 그때 찍었던 동영상이 있었다. 잠시 추억에 빠져들었다.

  

콸콸콸 물 흐르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저 물이 흘러 산타아나강으로, 태평양으로 이어진다. 흐르는 물소리는 언제 들어도 신선하다. 워터라인 트레일은 입구부터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반겨주며, 트레일 전 구간이 물길 가까이 있어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다. 일 년 열두 달 꽃이 피어 있고 특히 봄철에는 꽃밭을 거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꽃이 만발하다. 하지만 이곳은 동영상을 촬영한 다음해인 2015년 6월에 난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다. 불은 한 달 가까이 계속되면서 3만 에이커가 넘는 삼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Lake Fire라고 명명된 이 불로 아직도 많은 지역은 입산이 금지되고 있다.

  

불이 옮겨 붙지 않은 일부 지역에 입산이 허용된 것은 산불이 진화되고 한 달이 지난 뒤였다. 워터라인 트레일은 입산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레인저 활동차 몇 차례 올랐다. 하지만 자원봉사자들의 모임인 San Gorgonio Wildness Association의 디렉터가 입산금지 지역에 출입하지 말라고 한 후로는 그곳을 찾지 않았다.

  

동영상을 몇 번 반복해서 보니 이 동영상은 불에 타버리기 전의 워터라인 트레일을 기록해 놓은 귀중한 자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보기에는 아까웠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었다. 페이스북에 올렸다.

 

동영상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댓글이 달렸다. 산불이 난 후에 올랐던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영상 속 그곳이 함께 올랐던 워터라인 트레일인가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니 그에 대한 답글을 다음과 같이 올렸다.

 

그 전에는 이렇게 아름다웠군요. 사실은 산에 갔다 온 다음날 하루를 꼬박 앓아누웠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멀쩡히 일어났고요. 그날 산에 갔다 와서 제가 기록을 남겼는데 그것 때문에 하루 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이렇게 썼거든요‘. 줄지어 서있다. 그대로 죽음을 맞이한 것들은 죽은 이후에도 그 모습 그대로 꼿꼿이 줄지어 서서 죽은 것들의 열병식을 한다. 수천의 병사와 말이 무덤 속에 줄지어 서있는 진시황의 병마용총도 이러진 못하리라. 죽은 것들의 기운이 산을 덮고 있었다.’

  

이글을 읽고 깜짝 놀랐다. 똑 같은 것을 보고 이렇게 그 느낌이 다를 수가 있을까? 나는 그날 산행에서 돌아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불에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꼿꼿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파란 싹과 예쁘게 핀 꽃들, 죽음을 뚫고 일어선자들의 함성을 들었다. 골짜기를 가득 채운 물소리, 새소리, 발자국 소리가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렸다. 메시아를 찬미하는 장엄한 연주였다. 죽음의 사도들은 고개 숙이고 엎드려 있었다. 모든 것들이 타버린 그 속에 평화가 있었다.

  

산불이 진화되고 약 5~6개월 흐른 그때, 그곳에서 한 사람은 죽음의 열병식을 다른 한 사람은 잿더미 속에서 다시 피어오르는 생명을 보았다.

  

산에 다녀온 후 죽음을 기록한 것 때문에 다음날 하루 앓는 벌을 받았다는 그의 글은 산에서 느꼈던 죽음에 대한 연상이 산행 후유증으로 이어진 것이라는 의미이겠지만, 그와 나의 극명한 느낌의 차이가 오히려 그날 그 산의 모습을 더 선명하게 떠오르게 한다.

  

죽음을 존재의 소멸이라 한다. 존재와 소멸은 서로 상반되는 말이다. 존재는‘있는 것’이고 소멸은‘없는것’이다. 하지만 이 두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모호해질 때가 있다. 소멸되어 없어진 존재가 실재 존재보다 더 선명하게 떠오를 때가 있지 않던가.

  

삶의 사진첩 속에는 앞서 소멸된 존재들이 소멸되기 전에 남겨 놓은 사진들과 동영상들이 있다. 그리고 가끔 우리들이 스스로 사진첩을 들추지 않았는데도 어느 날 불쑥 드러나 소멸되기 전보다 더 명확하게 인식되는 경우도 있다. 존재와 소멸이라는 서로 상반되는 것이 더욱 선명한 기억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함께 산행을 했던 후배는 세상을 떠났으나 그와 함께 한 산행은 기록 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그는 추억속에 여전히 머물고 있다. 죽음이 존재의 소멸이라 하지만 그 존재가 남긴 기억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살아 있는 것이다. 마치 잿더미로 변해버린 삼림이 기억 속에서 영원히 파랗게 자라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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