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높은 곳을 향하여
04/23/18  

대선 참패 후 외부활동을 자제해오던 힐러리가 세계여성의 날 열린 한 행사에서 소회를 밝혔다. 힐러리는 “삶은 우리 모두에게 좌절을 안겨준다. 만일 당신이 인생을 충분히 산 나이라면 아마 좌절을 경험해봤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내 인생도 부침이 있었다. 지난 몇달간 잠을 청하고 영혼을 찾고, 반성도 하고, 숲을 오래 걸었다. 그러는 동안 나를 지지하고 격려해준 지역 사회, 가족, 친구들에게 감사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본인도 당선될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모든 여론조사에서도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을 깨버렸다. 잠이 올 리가 있겠는가? 살면서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다 잡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놓쳤을 때의 아쉬움, 실망감, 좌절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하물며 거머쥐었다고 생각했던 미국 대통령 자리를 놓쳤으니. 허무하다느니, 헛되다느니 하는 것은 뜻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탄식처럼 하는 말이지, 결코 우리의 삶이 허무하고 헛되다고 하는 말은 아니다. 인생은 분명 참으로 값지고 귀한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살지만 그 과정은 거의 비슷하다. 태어나 똥오줌가리게 되고 말을 배우고, 글을 읽고 쓰면서 사리분별을 배운다. 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갖게 되고 혼인을 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다가 손주들과 놀면서 얼마간 살다보면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과정은 비슷하게 진행될지라도 삶의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부모 잘 만나서 별로 힘들이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고, 움막에서 어렵게 사는 부모를 만나 평생 고생만 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그 삶의 내용과 질이 중요한 것이다.

  

예수처럼 인류의 구원을 사명으로 살다간 이도 있고, 자신의 깨달음을 통해 중생구제를 지상과제로 살다간이도 있다. 소크라테스처럼 악법도 법이라고 외치며 그릇된 판관의 판결에 의해 목숨을 마친 이도 있다. 공자도 제자들과 더불어 다니며 먹고 마셨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기에 빼놓을 수 없겠다. 이렇게 인류의 성인이라 일컬어지는 네 사람 모두 제자들과 더불어 다녔고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먹고 마셨다. 바로 여기 인생의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바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동일한 목적을 갖고 더불어 살아갈 때 즐겁고 유쾌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0일,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관 전원일치로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헌재는 국회가 박 전대통령을 탄핵하면서 탄핵소추안에 적시한 탄핵사유 13개를 크게 4개로 분류해 각 사안별로 판결했다.

  

헌재는 공무원 임면권(任免權) 남용, 언론 자유 침해,세월호 참사 책임에 대해서는 탄핵 사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서원(최순실)에 대한 국정 개입 허용과 권한남용과 관련하여 위헌·위법 행위가 대의민주 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했고 헌법 수호의 의지가 없다며 파면을 선고했다.

 

박 전 대통령이 최서원을 어디서 어떻게 만났고 그 이후 어떤 일을 함께 벌였는지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삶에서 함께 했던 바로 그‘누구’로 인해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으로 기록되게 되었다. 또 그‘누구’와 함께 사회를 지탱하는 법률이 인정할 수 없는 목적을 가지고 어울렸기 때문에 탄핵의 화살을 피하지 못 했다. 그로 인해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며 부녀 대통령이란 화려한 수식어도 더 이상 빛을 발할 수 없게 됐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망을 꿈꾸던 정치인이기 이전에 인고(忍苦)의 삶을 살아온 여성으로서의 힐러리, 부모를 총탄에 잃고 정치판에 끌려들어가 험난한 삶을 버텨온 여성 박 근혜는 모두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정치인이다. 그러나 두사람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헌재의 파면 선고 후 말을 잃었다는 박 전 대통령이나 대선 패배 후 한동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힐러리나 그들의 마음속에서는‘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앞으로 그들이 살아갈 삶에는 보석처럼 값지고 귀한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값지고 귀한 것들을 그들이 누구와 함께, 어떤 목적으로 향유하느냐에 따라 실패의 전철을 다시 밟을 수도, 더 높은 삶의 질을 만들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하루 빨리 실패와 좌절에서 벗어나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예전보다 더 값지고 귀한 삶을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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